[우분투칼럼] 한국 여행객의 '미개척지' 아프리카…첫발은 남아공서

연합뉴스 2026-04-09 08:00:07

티모시 디킨스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SAFCHAM) 회장

티모시 디킨스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 회장 겸 법무법인 대륙아주 외국변호사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설 연휴 맞아 떠나는 사람들

지난 설날 연휴 기간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이다. 공항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여행지는 다양했다. 세상을 탐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명하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많은 한국인에게 여행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경험이고, 발견이며, 자신의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욜로'(YOLO) 라이프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방문하고 다양한 경험에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기성세대는 공휴일을 중심으로 한 3∼4일 정도의 비교적 짧고 효율적인 일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은 가까우면서 접근하기 쉽고 익숙한 여행지를 선택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국인들의 여행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지만, 아프리카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이는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 거리·인식·이동 시간이라는 현실적인 요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이 아프리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아프리카는 여러 면에서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직접 경험해 본 한국인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그리고 실제로 그 여정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아프리카는 단순히 방문하는 또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몸 깊숙이 스며드는 곳이다.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도

◇개인적인 시선

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성장하고 어린 시절부터 아프리카 여러 지역을 여행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 경험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 특히 대자연이 지닌 아름다움과 규모 그리고 고요하면서도 강인한 힘에 매료됐다.

아프리카의 자연환경이 주는 경험은 언어로 온전히 담아내기 쉽지 않다. 끝없이 펼쳐진 풍경과 고요함,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는 야생의 존재들은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선사한다. 그 순간 여행자는 단순한 자연을 넘어, 보다 근원적인 존재와 다시 연결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남긴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지내면서 아침에 눈을 뜨며 행복하지 않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시간을 보낸 많은 이들이 가슴 깊이 공감하는 말이다. 내가 느낀 감정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은 뉴욕처럼 잠들지 않는 도시다. 서울만의 아름다움과 에너지, 리듬이 있지만, 쉼 없이 돌아가는 속도 탓에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돌아보는 법을 잊기 쉽다. 아프리카는 바로 그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잠시 속도를 늦추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다시금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일깨워준다.

앞으로 몇 년 후 어린 딸과 함께 이 경험을 나눌 날을 고대하고 있다. 내가 느꼈던 경외감과 광활함, 그리고 깊은 연결감을 직접 느낄 기회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수많은 목적지로 가득하다. 앞으로 몇 달간 나는 나에게 특히 의미 있었던 곳들을 소개하려 한다. 완전한 여행 가이드라기보다는, 내 삶에 깊은 여운을 남긴 아프리카 대륙을 개인적인 시선으로 소개하는 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경이로운 장소들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약 '버킷리스트', '욜로'(YOLO), 그리고 약간의 '포모'(FOMO)라는 동력으로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아프리카는 반드시 그 목록에 있어야 한다. 결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남아공: 모든 것이 시작되는 곳

보통 아프리카 여행의 첫발을 떼는 곳은 남아공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압도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케이프타운은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스텔렌보스(Stellenbosch)의 포도밭부터 장엄한 해안선, 고래 관찰 및 상어 다이빙 체험,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 해변의 펭귄까지. 이곳은 언제나 기대를 뛰어넘는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다. 남아공의 와인 문화에 유럽의 역사가 짙게 배어 있다는 점이다. 17세기 후반, 프랑스 위그노 교도들이 케이프 지역에 정착하며 대대로 이어온 와인 양조 지식을 이곳에 뿌리내렸다. 그 영향은 오늘날 와인의 품질뿐만 아니라 와이너리의 건축과 조경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특히 프란슈후크(Franschhoek) 같은 지역에서는 케이프 더치(Cape Dutch) 양식과 프랑스풍 스타일이 주변 경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남아공에 있는 와인 농장

시간이 흐르며 남아공은 와인 세계에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구축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피노타주(Pinotage)다. 이 품종은 20세기 초 피노 누아(Pinot Noir)와 생소(Cinsaut)를 교배하여 탄생한, 남아공의 고유 품종이다. 피노타주는 현지의 혁신과 적응력이 빚어낸 결실이다. 단순한 와인 그 이상이다. 강렬하고, 개성이 뚜렷하며 남아공만의 색깔을 오롯이 담고 있다.

이처럼 역사와 풍경, 그리고 이곳만의 독특함이 어우러진 케이프 와인 지대는 참으로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단순히 와인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유산, 그리고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익숙한 듯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공간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들은 조금 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있다.

◇희망봉(Cape Point)

희망봉에 서서 광활한 대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의 끝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강렬한 바람과 압도적인 규모, 그리고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 서로 다른 빛깔로 넘실거리는 광경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마치 아프리카의 가장 끝자락에 서 있는 듯한 감각은 우리를 한없이 작게 만들지만, 그 감정은 오히려 기분 좋은 경험이다. 그곳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가슴 속에 오래도록 머무는 하나의 감각이 된다.

하늘에서 바라본 아프리카 남서단 희망봉

희망봉은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곳은 수 세기 동안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향신료 무역 항로의 중요한 중간 기착지였다. 선박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수리하며 보급을 마쳤다. 이후 동쪽 또는 서쪽으로 항해를 이어갔다.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은 케이프 지역에 네덜란드 정착지가 세워지는 계기가 됐다. 이는 남아공의 초기 발전의 토대이자 유럽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배경이 됐다.

희망봉 끝에서 바라본 바다

오늘날 이곳에 서면 대륙과 대륙이 만나는 교차점으로서 유산을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그 역사적 소명은 현대적 맥락 속에서 다시 한번 새롭게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 무역 구조가 변화하고 새로운 협력 관계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남아공은 아프리카와 세계를 잇는 연결점이 될 뿐만 아니라 아시아, 특히 한국과 연결 고리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케이프 포인트는 단순한 지리적 명소가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연결의 상징이다.

◇가든 루트 (Garden Route)

석양이 지는 가든루트

남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가든 루트는 하나의 여행지라기보다 여정에 가깝다. 모셀 베이(Mossel Bay)에서 스톰스 리버(Storms River)까지 이어지는 이 지역은 험준한 절벽과 탁 트인 바다·울창한 숲·고요한 석호, 그리고 작은 해안 마을들이 변화무쌍하게 이어지고 있다.

남아공 가든루트

특히 거대한 절벽이 잔잔한 석호 입구를 지키고 있는 나이스나 헤즈(Knysna Heads)와 같은 곳은 이 지역의 극적이면서도 평화롭고, 압도적이면서도 다정한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가든루트

이 지역은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삼촌이 한때 나이스나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인근의 세지필드(Sedgefield)라는 마을을 좋아한다. 가든 루트의 다른 곳보다 조용하고 소박한 이 마을은 지역 특유의 여유로운 리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해안가와 마주한 가든루트

해안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매번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이 여정은, 목적지 그 자체보다 이동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경험이 된다. 남아공의 다채로움은 억지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앞에 펼쳐진다.

◇신의 창(God's Window)

내륙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음푸말랑가(Mpumalanga)에 위치한 '신의 창'이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해발 1천800m를 넘는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계곡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곳을 종종 구름이 뒤덮는다. 이곳에 서면 하늘과 땅 사이에 멈춰 선 채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름 그대로 하늘에 위치한 창을 통해, 지상의 아름다움을 내려다보는 듯한 경험이다.

이 지역은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드라켄스버그(Drakensberg) 절벽 지형의 일부이다. 하이펠트(highveld) 고원 지역이 아래의 광활한 로우펠트(lowveld)에 자리를 내어주는 경계점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은 자연의 분리대 역할을 해왔다. 이미 알려진 세상이 끝나는 지점이자, 더 깊고 미지의 세계가 시작되는 문턱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바로 그 점이 신의 창이 가진 힘이다. 이곳은 단순히 눈앞의 풍경을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시선 너머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구름 아래에는 첫눈에 담아낼 수 없는 수많은 풍경과 생명, 그리고 가능성이 존재한다. 여러 면에서 이곳은 아프리카라는 대륙 그 자체를 투영하고 있다.

신의 창 전경

◇크루거 국립공원(Kruger Park)

다음은 크루거 국립공원이다. 약 2만㎢에 달해 소국 하나와 맞먹는 크기를 자랑하는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야생 보호구역 중 하나다.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버펄로로 대표되는 '빅 파이브'(Big Five)를 비롯해 수백 종의 포유류와 조류, 식물들이 거대하고 유기적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특히 보호구역 안에서 마주하는 야생은 독보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밤이 찾아오면 문명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완벽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 속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동물의 울음소리, 수풀 사이의 움직임, 그리고 자연의 리듬이 멈춤 없이 이어진다. 겸손해지는 동시에 깊은 안정을 주는 경험이다. 해가 떠오르면 모든 것이 다시 요동친다. 대지로 쏟아지는 빛줄기는 평온함과 동시에 매 순간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마주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크루거 국립공원의 지프차

지난 여행에서 아내와 함께 목격한 한 장면은 이러한 야생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암사자가 사냥 직후 임팔라 옆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포식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사자의 숨소리, 살을 찢는 소리, 그리고 공기 중에 남아 있던 냄새는 매우 강렬하고 압도적인 경험이었다. 이것이 잘 짜인 연출이 아니라 가장 본능적이고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쿠르거 국립공원의 치타

이 모든 경험은 남아공의 본질을 관통한다.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태초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한 여정 안에서 공존하는 곳이다.

◇글을 마치며

여행의 끝에 남는 것은 장소 그 자체가 아니라 그곳이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남겼는가다. 세상 어디에 있든, 마음은 다시 집으로 향하곤 하니 말이다. 아프리카는 우리를 잠시 멈춰 서게 하고, 시야를 넓혀주며,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 잃어버렸던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워준다. 이곳은 때로 불편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바로 그 점이 아프리카의 진정한 가치일지도 모른다. 더욱 촘촘하게 연결되는 세상 속에서,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자신을 성찰하며, 완전히 새로운 나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곳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멀리 나가봐야 집의 소중함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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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모시 주한남아공상공회의소(SAFCHAM) 회장

현 대륙아주 변호사, 아프리카 실무 총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스테이트대학(University of the Free State) 상학사(B.Com) 및 법학사(LL.B.) 취득, 주한 남아공상공회의소(SAFCHAM) 회장, 법무부 자문위원, 월드지식포럼 및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고위급 패널 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