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웃] 전쟁의 서사도 승자 몫

연합뉴스 2026-04-09 07:00:06

영화 <론 서바이버> 포스터

(서울=연합뉴스) 김종우 선임기자 = 2005년 6월 아프가니스탄 쿠나르주 산악지대. 미 해군 특수전 부대 네이비실 팀은 탈레반 연계 민병대(ACM)를 추적하기 위한 '레드윙 작전'(Operation Red Wings)에 투입됐다. 본래는 정찰·표적 식별 임무였다. 작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정찰조가 민간인과 접촉하면서 위치가 노출됐고, 곧바로 탈레반의 대규모 공격이 이어졌다. 이후 구조 과정까지 포함해 피해가 확대되며, 미군 특수전 역사에서 가장 큰 피해 중 하나로 기록됐다.

▶ 2013년 개봉한 영화 <론 서바이버>는 이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레드윙 작전'에서 유일한 생존자 마커스 러트렐의 회고록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는 총격전보다 네이비실 대원들의 '선택'을 전면에 내세웠다. 대원들은 산악지대에서 비무장 염소치기 민간인들과 조우했다. 순간적으로 대원들은 고민했다. 민간인들을 잡아두면 작전을 유지할 수 있지만, 풀어주면 위치가 적에게 노출될 수 있다. 대원들은 민간인들을 살려줬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민간인들은 탈레반에 달려갔고, 대규모 공격이 쏟아졌다.

▶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 장면을 윤리적 질문으로 끌어올렸다. "염소치기 민간인들을 살려야 하는가, 죽여야 하는가." 공리주의 관점에선 소수를 희생해 다수를 살릴 수 있다면 그 선택은 정당화된다. 그러나 칸트의 윤리학은 다르다. 인간을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 사람을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로 취급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교전수칙도 민간인을 원칙적으로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며,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한 공격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윤리적 언어들은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하지만 선의와 결과는 달랐다. 정의는 원칙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결과로 판단해야 하는가. 샌델이 던진 질문이다.

▶ 지난 3일(현지 시간) 이란 상공에서 미 공군 F-15E가 격추됐다. 조종사 1명은 무사히 구출됐다. 하지만 시차를 두고 비상 탈출했던 무기 담당 장교는 이란 남부 자그로스산맥에 남겨졌다. 발목을 다친 이 장교는 권총 한 자루만 지니고 해발 2천m가 넘는 산악 지대 바위틈에 숨었다고 한다. 이 장교가 민가에 내려가지 않고 산악지대를 택한 것은 '레드윙 작전'의 교훈을 떠올렸기 때문이었을까. 장교는 그 이튿날 구조신호를 보냈고, 미군은 대규모 항공기 전력과 최정예 특수부대원들을 투입하고, CIA(중앙정보국)의 기만 작전까지 동원해 구출했다.

▶ 외신들은 이 구출의 서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단 한 명도 버리지 않는다"는 미군의 원칙은 이른바 '국뽕'으로 흘렀다. 다른 한편에선 미군이 이란의 방공망을 무력화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미국-이란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이란 측 민간인 피해에 대해선 아무도 물으려 하지 않는다.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구출된 자의 이름은 기록되지만, 쓰러진 자의 이름은 지워진다. 전쟁의 서사도 결국 승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