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비료가격 급등에 농민 손실 커져…"수확 포기"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중동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동남아·남아시아 각국의 농민들이 석유·비료 공급 차질로 농사에 큰 타격을 받으면서 식량 위기 우려가 번지고 있다.
농작물 수확 철인 곳에서는 농기계 연료비·수송 비용 급등에 수확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파종 철을 앞둔 곳은 비료 부족에 파종을 줄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필리핀 북부 루손섬 벵게트주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로메오 와가얀(57)은 유가 상승에 따른 수확·소송 비용 급증으로 수확 철이 된 채소를 밭에서 썩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와가얀은 "수확을 하면 노동·운송·포장 비용 때문에 손해만 더 커질 뿐이다. 아무런 돈도 벌지 못한다. 그래서 아예 수확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지난달 경유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60%, 휘발유는 27% 각각 뛰어올랐다.
다른 채소 농사꾼 아널드 카핀(27)은 "경유 가격 상승은 파종과 수확 모두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배송비 때문에 농산물을 팔고 나면 남는 돈이 거의 또는 아예 없다고 전했다.

태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태국 중부 아유타야주의 농민 타나뎃 뜨라이욧은 양수기와 농기계 가동에 꼭 필요한 경유를 구하기 위해 주유소에서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2명만 남았을 때 연료가 다 떨어졌다는 안내 방송을 듣고는 닷새 동안 평소처럼 연료를 구하지 못했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타나뎃은 "작물을 가꾸고 벼농사를 위해 물을 퍼 올리려면 연료가 필요하다"면서 "밭에서 작물이 썩어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말했다.
100일 치 에너지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는 태국 정부의 입장에도 전국의 많은 주유소에는 석유를 사려는 긴 줄과 함께 '품절' 표시가 보인다.
태국 농업협회 고위 관계자는 농민들이 다음 파종을 위해 비료를 사기 시작하는 한 달 후면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면서 "만약 5월에도 전쟁이 계속되면 가격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도는 천연가스를 원료로 중동에서 주로 생산되는 요소비료 등 질소비료 공급 부족 우려에 시달리고 있다.
인도는 연간 6천만t 이상의 비료를 소비, 중국에 이어 세계 제2의 비료 소비국으로 인도 농업은 중동산 화학비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인도 내 요소비료 소비량은 연간 약 3천500만∼4천만t에 달하지만, 전쟁으로 인도의 요소비료 생산 공장에 공급되는 천연가스 양은 약 30% 급감했다.
이에 따라 인도의 곡창지대로 꼽히는 북부 펀자브주·하리아나주 농민들은 오는 6∼7월 쌀과 면화 등 작물 파종을 앞두고 비료 구매철인 5월이 다가오자 공황 상태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펀자브주 한 시골 마을에서 밀과 쌀을 번갈아 재배하는 구르빈더 싱(52)은 "비료를 공급받지 못하면 수확량이 줄어들 것"이라면서 "이미 수익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싱은 "우리는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서 "이 전쟁이 끝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펀자브주의 다른 농민 테즈비어 싱도 "주변 농부들이 공포 때문에 유통기한이 짧은 비료를 사재기하기 시작했다"면서 비료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 다른 동남아·남아시아 국가들도 식량 생산비 급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미얀마의 경우 지난해 수확량 기준 올해 식량 생산 비용이 배로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미얀마는 2021년 쿠데타 이후 내전과 경제 혼란으로 이미 인구의 약 4분의 1이 심각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어 이번 사태로 인도적 위기가 한층 극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각국 상황을 고려하면 오는 6월까지 이란 전쟁이 종식되지 않을 경우 세계 약 4천500만 명이 추가로 심각한 기아에 처할 수 있다고 WFP는 추산했다.
jhpark@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