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들판에서 올라온 약초의 봄, 쑥

연합뉴스 2026-04-09 00:00:23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거문도 해풍 쑥

봄이 오면 산과 들에서 가장 먼저 돋아나는 풀이 있다. 바로 쑥이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땅을 뚫고 연한 잎을 내미는 모습은 마치 생명이 다시 시작되는 신호처럼 보인다. 겨울 동안 얼어 있던 대지가 조금씩 풀릴 때 가장 먼저 봄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바로 쑥의 향기다. 사람들은 흔히 봄을 꽃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봄의 시작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은 들판에 퍼지는 쑥의 향이다.

우리 조상은 이 풀을 나물의 하나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약초로 여겼다. 그래서 쑥을 '의초'(醫草)라고 불렀다. 오래전부터 쑥은 음식이면서 동시에 약이었다. 몸이 허할 때는 음식으로 먹고 병이 있을 때는 약으로 쓰며 자연의 기운을 몸에 들이는 귀한 재료로 여겨왔다.

◇ 쑥의 영양학

약선학에서는 쑥을 애엽(艾葉)이라 부른다.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약간 쓰면서 향이 강하다. 비위와 간, 신장의 기운을 돕고 기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며 몸속의 찬 기운과 습기를 몰아내는 약초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자궁을 따뜻하게 하고 지혈 작용이 뛰어나 여성 질환을 다스리는 데 널리 사용돼 왔다.

'본초강목'에는 애엽은 순양(純陽)의 기운을 지녀 십이경맥을 통하게 하고 양기를 되살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쑥은 침과 뜸의 재료로도 널리 쓰인다. 오래된 쑥일수록 약성이 깊어진다고 하여 '칠년지병 구삼년애'(七年之病 求三年艾)라는 말도 있다. 오래된 병에는 최소한 삼 년 묵은 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쑥은 양생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기혈의 흐름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약초로 여겨져 왔다. 말린 쑥으로 뜸을 뜨면 경락이 따뜻해지고 막혀 있던 기운이 풀리면서 몸의 면역력이 높아진다. 그래서 전통의학에서는 쑥을 두고 '백 가지 병을 다스리는 풀'이라 했다.

우리 민족에게 쑥은 또한 문화와 신앙 속에 깊이 뿌리 내린 식물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바로 단군 신화다. 환웅이 사람이 되고 싶어 하던 곰에게 쑥과 마늘을 주며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고 먹으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곰은 이를 지켜 웅녀가 됐고 결국 단군을 낳아 우리 민족의 시조가 됐다.

이 신화 속에서 쑥은 새롭게 인간을 태어나게 하는 음식으로 등장한다. 이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기혈을 돕는 쑥의 약성을 오랜 세월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조상들의 지혜가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은 봄이 되면 들에 나가 어린 쑥을 뜯어 국을 끓이고 떡을 만들었다. 음력 삼월 삼짇날이나 오월 단오에는 쑥떡을 만들어 먹으며 액운을 쫓고 건강을 기원했다. '동국세시기'에는 단옷날 쑥을 문에 걸어 두면 사악한 기운을 막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쑥의 향은 벌레를 쫓는 효과가 있어 여름밤 모깃불로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생활 경험이 쑥을 '벽사의 풀'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현대 과학 역시 쑥의 가치를 새롭게 밝혀내고 있다. 쑥에는 시네올과 유칼립톨 같은 향기 성분이 풍부하며 비타민 A·B·C와 단백질, 미네랄이 많이 들어 있다. 항균 작용과 항바이러스 효과, 기침 완화, 간 기능 보호, 알레르기 완화 등 다양한 효능이 보고되고 있다. 또한 지방 대사를 도와 위장이 약하고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쑥의 진짜 가치는 약으로만 쓰일 때보다 음식으로 먹을 때 더 부드럽게 몸에 스며든다. 약선 요리는 바로 그 지혜에서 출발한다. 자연의 기운을 음식 속에 담아 몸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 손자병법으로 바라본 쑥 요리

이러한 쑥의 성질은 손자병법의 '병세'(兵勢)를 떠올리게 한다. 잘 싸우는 자는 형세를 만들고 그 형세를 타고 승리를 얻는다고 했다.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힘 그 자체가 아니라 흐름과 기세다. 작은 힘이라도 흐름을 타면 큰 승리를 만들 수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몸을 살리는 음식은 단순히 재료의 힘이 아니라 자연의 기세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쑥으로 만든 여러 음식은 바로 이 병세의 지혜를 보여준다.

먼저 쑥차를 볼 필요가 있다. 봄의 어린 쑥을 말려 뜨거운 물에 우려내면 은은한 향이 퍼진다. 이 향은 몸의 기운을 부드럽게 열어 준다. 겨울 동안 굳어 있던 기혈이 서서히 풀리며 몸속의 냉기가 빠져나간다. 이는 전쟁에서 병력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만들어 적의 진형을 흔드는 전략과 같다. 작은 차 한 잔이 몸의 기세를 바꾸는 것이다.

다음은 쑥국이다. 봄날 갓 뜯은 쑥을 된장국에 넣어 끓이면 향이 국물 속에 스며든다. 쑥의 따뜻한 기운과 된장의 깊은 발효 향이 만나 위장을 편안하게 한다. 양생에서는 봄철에 간의 기운이 왕성해지므로 비위를 보호하는 음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쑥국은 바로 그 균형을 잡는 음식이다. 강한 군대를 정면으로 상대하기보다 지형과 시간을 이용해 균형을 만드는 병법과 같다.

봄 도다리 쑥국

쑥떡은 봄의 기운을 가장 풍성하게 담은 음식이다. 찹쌀가루에 어린 쑥을 넣어 찌면 색과 향이 살아난다. 떡은 곡식의 기운을 담고, 쑥은 들판의 생명력을 담는다. 곡식과 산야초가 만나 몸의 기운을 든든하게 채운다. 병법에서 병력과 지형을 결합해 큰 기세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쑥떡

쑥을 밀가루 반죽에 묻혀 기름에 지지면 향이 더욱 짙어진다. 열이 향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손자는 병세를 설명하며 물의 흐름을 비유로 들었다. 물은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곳으로 흐르며 스스로 형세를 만든다. 쑥전 또한 재료의 성질을 거스르지 않고 열의 흐름을 이용해 향을 풀어낸다.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조리의 지혜다.

쑥버무리는 쌀가루와 쑥을 섞어 시루에 찌는 간편한 음식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포만감이 크고 위장을 따뜻하게 한다. 농부들이 봄 농사를 시작하기 전 기운을 보충하던 음식이었다. 전쟁에서 군량이 병력을 지탱하듯, 쑥버무리는 몸을 지탱하는 양생 음식이다.

쑥버무리

쑥만두 역시 봄철에 즐겨 먹던 음식이다. 잘게 다진 쑥을 두부와 채소로 섞어 만두소로 만들면 향이 부드럽고 소화가 잘된다. 만두는 여러 재료가 조화를 이루는 음식이다. 서로 다른 성질이 어우러질 때 몸에 편안한 기운이 만들어진다. 병법에서 말하는 협동과 연합의 전략과 닮았다.

도교 양생에서는 음식이 곧 기(氣)를 다스리는 도구라고 본다. 자연의 기운을 몸 안으로 받아들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건강의 길이다. 쑥은 봄의 양기를 가장 먼저 품는 풀이다. 그래서 겨우내 움츠러든 몸을 깨우고 기혈의 흐름을 다시 시작하게 한다.

손자병법의 병세는 전쟁의 흐름을 읽는 지혜지만 사실은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강한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얻은 것이 이긴다.

봄날 쑥차 한 잔을 마시고 쑥국 한 그릇을 먹으며 쑥떡과 쑥전을 나누는 일은 자연의 흐름을 몸 안으로 들이는 일이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무거울 때 봄 들판의 쑥 향기를 떠올려 보자. 따뜻한 국물 속에서 쑥의 향이 퍼지면 겨울 동안 굳어 있던 몸의 기운이 다시 살아난다.

봄이 오면 쑥을 먹으라는 말은 그저 계절 음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흐름에 맞춰 몸을 돌보라는 오래된 양생의 철학이다. 그리고 그 철학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형세를 얻는 자가 승리하듯 음식에서도 자연의 기세를 얻는 사람이 건강을 얻는다.

자연은 늘 말없이 가르친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먹고 배우느냐에 달려 있다. 봄의 쑥 한 그릇은 음식이 아니라 자연이 전하는 병법이다. 그리고 그 병법을 밥상 위에서 읽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저속노화의 기본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