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할 만한 중재국"…트럼프에 아부해 호감 샀다는 평가도
중동전쟁 장기화는 파키스탄도 부담…이집트·튀르키예도 중재 도와

(자카르타=연합뉴스) 손현규 특파원 = 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에 전격적으로 합의하면서 중재국으로 핵심 역할을 한 파키스탄의 존재감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다.
8일(현지시간) AP·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협상 시한(미 동부시간 7일 오후 8시)이 임박하자 2주 휴전안을 전격 수용했다.
이는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전쟁이 시작된 지 38일 만에 합의된 일시 휴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이란에 '48시간 시한'을 제시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으면 교량과 발전소 등 인프라 시설을 파괴하겠다고 확전을 예고한 바 있다.
이후 이를 세 차례 유예한 그는 시한 당일인 7일 오전 "오늘 밤 한 문명 전체가 사라져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며 이란을 향한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시한을 5시간 앞두고 파키스탄이 '2주 휴전 중재안'을 제안했고, 미국과 이란이 이를 수용하면서 확전을 코앞에 두고 파국을 피했다.
파키스탄이 중재안을 미국과 이란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집트와 튀르키예도 도왔다.
이 중재국들은 '데드라인' 전에 양국 합의를 끌어내거나 적어도 시간을 더 벌어 파국을 막으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파키스탄은 중동 전쟁이 3주째를 넘어가던 지난달 23일 전후로 본격적인 중재국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파키스탄에서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평가받는 아심 무니르 파키스탄 국방군 총사령관이 지난 22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했고, 다음 날에는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통화했다.
지난달 26일에는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자국 중재로 미국과 이란이 간접 대화를 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동안 파키스탄이 중대한 외교 사안에서 중재국 역할을 맡은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과거 미국과 이란의 협상은 주로 오만이나 카타르 등 중동 국가가 주선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카타르를 비롯해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미군 기지가 있는 중동 국가들이 이란의 보복 공격을 받으면서 직접 중재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미군 기지가 없어 이번에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파키스탄이 이란과 이웃국이자 이슬람 형제국이면서 미국과도 오랜 기간 유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중재국으로서 독보적 입지를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파키스탄에는 수니파 무슬림이 많지만, 시아파 무슬림 인구도 세계에서 이란 다음으로 많다.
이 때문에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 내 강경파를 설득하는 데 있어 수니파가 많은 다른 이슬람 국가보다 중재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키스탄은 또 미국과 관계에서는 2004년부터 '주요 비(非)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이다.
지난해 6월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폭격했을 때 공식적으로는 규탄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는 관계를 강화하는 행보를 보였다.
특히 무니르 파키스탄 총사령관은 지난해 6월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만나는 등 트럼프 행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지난해 육군 참모총장에서 승격돼 육군뿐만 아니라 해군과 공군까지 지휘하고 있으며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외교 정책과 경제까지 중요한 사안마다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는 숨은 실세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파키스탄과 앙숙인 인도 매체 이코노믹타임스는 지난해 무니르 총사령관이 트럼프 일가와 관련된 가상화폐 사업을 추진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추천하는 등 아부해 호감을 샀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싱크탱크 퀸시연구소의 애덤 와인스타인은 로이터에 "파키스탄은 미국·이란 양국 모두와 실질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긴장 관계를 맺은 역사가 있다"며 "신뢰할 만한 중재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파키스탄이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남 좋은 일'만 하기 위해 중재국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면 파키스탄에까지 불똥이 튀어 국경 안보가 위태로워질 우려가 있고, 계속된 연료 공급 차질로 악화할 우려가 있는 국가 경제도 부담이다.
파키스탄은 석유와 가스 대부분을 중동 국가에서 수입하고 있다. 또 중동에서 일하는 파키스탄인 500만명이 매년 자국으로 보내는 송금액은 파키스탄 전체 수출 수익과 비슷한 규모다.
로이터는 미국과 이란의 회담이 이번에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성사되면 파키스탄이 1972년 당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중재한 이후 그동안 누리지 못한 외교적 위상을 국제사회에서 한층 끌어올릴 수 있다고 짚었다.
미국 싱크탱크 중동정책위원회의 선임 연구원인 카므란 보카리도 "파키스탄이 미·이란 회담을 주최하는 것은 전략적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며 "수십 년 동안 불안정한 국가로 지내온 파키스탄이 서아시아에서 미국의 주요 동맹국으로 재부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남아시아 전문가인 마이클 쿠겔만도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 "파키스탄은 몇 년만에 가장 큰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며 "이는 파키스탄이 이처럼 복잡하고 중대한 일을 해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 많은 비관론자들의 예상을 뒤엎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son@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