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뜨거운 대구의 건축·예술 투어 ① 군위 사유원

연합뉴스 2026-04-08 09:00:16

(대구=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최근 전국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군위의 사유원과 대구 간송미술관, 그리고 대구 근대골목은 서로 다른 공간처럼 보이지만 공통된 뿌리를 지닌 곳이다.

우리의 문화와 자산을 외세로부터 지켜내려 했던 의지가 그 배경에 있다는 점이다. 사유원은 일본으로 밀반출될 뻔했던 나무를 지켜낸 창업주의 이야기가 그 기원이다. 대구 근대골목 또한 그 어느 곳보다 뜨거웠던 영남 지역 항일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간송미술관 또한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평생을 바친 간송 전형필 선생의 뜻에서 출발한 공간이다.

이처럼 자연 속 사유 공간과 전통미술, 근대 건축과 역사 이야기가 결합하며 대구 여행의 의미를 한층 깊게 만들고 있다.

◇ 대구의 건축·예술 투어가 핫한 이유

최근 영남권의 건축·예술 투어가 주목받는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 등지에서 외지인들이 건축과 미술 관람을 위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영남지역 구석에 자리 잡은 정원과 미술관을 찾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곳이 군위의 사유원과 간송미술관이다. 특히 사유원은 수도권 관람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난해 관람객 가운데 지역 관람객은 40%에 불과하다. 약 40%가 서울 등 수도권이며 충청과 호남 등 타지역이 20%를 차지했다. 외지인이 60%나 된다. 간송미술관도 지난해 관람객 가운데 17%가 수도권에서 왔다. 두 기관이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뭘까.

◇ 생각이 흐르는 곳…군위 '사유원'

대구 군위 팔공산 자락을 따라 들어가면 조금 낯선 공간을 만나게 된다. 수목원 같기도 하고 미술관 같기도 하지만 어느 하나의 장르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이곳의 이름은 '사유원'이다. 이름 그대로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깊어지는 정원이다. 사유원은 숲과 건축이 서로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다. 오래된 나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사이로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이 주인공이고 건축은 그 풍경을 해석하는 장치처럼 배치돼 있다.

이 정원은 철강회사 TC 태창이 오랜 시간에 걸쳐 조성한 곳이다. 사유원의 시작은 일본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80년대 창업주 유재성 전 회장이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밀반출되려던 300년 된 모과나무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그 자리에서 몇 배의 가격을 제시하면서 나무를 되사들였다. 이 모과나무들은 사유원 내 108그루의 모과나무가 있는 '풍설기천년'에 자리 잡고 있다. 유 전 회장은 이후 전국의 노거수를 모으기 시작했다. 여러 곳에 흩어 심어 두었던 나무들은 2006년 군위의 넓은 땅을 마련하면서 한곳에 모였다. 정원이 문을 연 것은 2021년이지만 일반인들에게 본격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4년부터다. 나무를 모으기 시작한 시간까지 합치면 40년에 가까운 시간이 들어갔다.

◇ 기라성 같은 건축물들

사유원의 또 다른 축은 건축이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를 비롯해 승효상, 최욱 등이 건물 설계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사유원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逍遙軒)이다. 시자는 처음부터 이곳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구상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피카소가 전쟁의 비극을 다룬 작품 '게르니카'를 함께 전시하는 것이었다. 전쟁의 상처와 생명의 탄생을 한 공간에서 마주하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유원을 조성하던 유 전 회장이 이 땅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유 전 회장은 이곳이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격전지였다는 이야기로 시자를 설득했다. 그는 전쟁의 기억이 남은 이곳에서 평화의 의미를 담은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에 시자는 마음을 바꿨다. 피카소 작품 대신 자신의 조각을 설치하고 전쟁과 평화, 생명과 죽음을 사유하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건물이 바로 소요헌이다. 소요헌 내부에는 죽음을 뜻하는 공간과 삶을 뜻하는 공간이 공존한다.

느티나무 숲 가장자리에는 대나무로 높이 세운 '조사'가 있다. 이름 그대로 '새들의 수도원'을 뜻하는 건축물이다. 비무장지대 설치미술 프로젝트로 기획된 작품으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만들어졌다. 사유의 순례길에서 만나는 작은 경당도 눈길을 끈다. 시자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육면체와 삼각형이 결합한 기하학적 형태로 빛이 내부로 스며들며 묵상과 명상을 이끄는 공간이다.

◇ 아기자기한 요소들

사유원을 걷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도 만난다. 연못 옆 식당에서는 반얀트리 호텔 출신 셰프가 준비한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잔잔한 물과 숲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경험 자체가 하나의 여행처럼 느껴진다. 새우와 아보카도, 부라타 치즈와 살사 베르데가 어우러진 요리가 특히 인상적이다.

공연장 옆 작은 찻집 '가가빈빈'도 사유원에서 빼놓기 어려운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300년 된 모과나무 열매로 만든 차를 맛볼 수 있다. 은은한 향이 특징인 애플 매실차도 인기 메뉴다. 이곳의 입장료는 평일 1인당 5만원, 주말 6만9천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목원'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런데도 하루 관람 인원 350명은 대부분 예약으로 채워진다.

◇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문화

과거에는 문화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분위기는 달라졌다. 실제로 필자 주변에서도 대구 간송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문화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문화유산과 건축, 예술을 중심으로 한 여행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여행 상품도 등장했다. 사유원과 대구 간송미술관은 더 현대 대구, 호텔인터불고 대구 등과 협력해 자연·건축·전통예술·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한 1박 2일 여행 상품 '아트 앤 힐링 스테이인 대구'를 내놨다. 두 기관의 콘텐츠와 더 현대 대구에서의 쇼핑과 미식 체험, 호텔인터불고대구 숙박과 조식·사우나 이용 등을 포함한 올 인클루시브 방식이다.

이 같은 문화 관광에 대한 관심은 여행 업계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국내 철도 여행 동호회 가운데 규모가 큰 레일코리아 김용옥 대표는 기자가 사유원과 간송미술관을 취재하던 날 대구관광협회를 방문했다. 사유원과 협업한 여행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김 대표는 "사유원과 간송미술관처럼 영남 지역 문화 공간의 가치를 서울에서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며 "앞으로는 단순한 관광보다 의미 있는 경험을 찾는 여행이 더 늘어나면서 이런 문화 콘텐츠가 새로운 관광 흐름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