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공개된 '겔만 컬렉션', 2028년까지 스페인에서 장기 전시
문화계 "국보급 보물 해외로 보내는 건 국민 문화 권리 박탈"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멕시코 국립현대미술관(MAM).
평소와는 달리 미술관은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스페인어뿐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가 곳곳에서 들렸다. 관람객이 많고, 다양한 건 이른바 '겔만 컬렉션'이라고 불리는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주요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의 디에고' '목걸이를 한 자화상' 등 칼로의 대표작을 대중에 공개하는 건 거의 20년 만의 일이어서 멕시코 문화계에서도 화제가 된 전시였다.
화려한 색채와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의 그림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칼로는 멕시코뿐 아니라 현대 미술계에서도 손꼽히는 빅스타다.
여기에 '국민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의 비극적 사랑까지 곁들여지면서 그의 작품은 커다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표작 '내 마음속의 디에고' 같은 작품은 1천억원이 넘을 것으로 미술계는 추정한다.
이런 칼로 작품의 정수만 모은 게 '겔만 컬렉션'이다. 동유럽 출신 영화제작자이자 예술계의 큰손이었던 겔만 부부가 매입한 컬렉션으로, 칼로뿐 아니라 디에고 리베라,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등 멕시코 현대 거장의 작품을 총망라했다.

그러나 겔만 컬렉션에 속한 칼로의 주요 작품을 오는 2028년까지 멕시코에서는 볼 수 없게 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 보도했다. 멕시코의 유력 가문인 잠브라노가(家)가 2023년 이 컬렉션을 매입한 후,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과 관리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이에 따라 겔만 컬렉션이 오는 7월 스페인 북부에서 개관하는 파로 산탄데르 박물관으로 옮겨져 전시된다.
이 소식에 멕시코 문화계는 발칵 뒤집혔다. 국보급 보물의 해외 유출 논란이 빚어지면서 예술가와 학자 등 380여명은 최근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정부에 해명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국보급 보물을 해외로 보내는 것은 멕시코 국민의 문화적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법 위반 논란도 거세다. 멕시코 법에 따르면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예술적 기념물'로 지정돼 해외 대여 기간이 최대 2년으로 제한된다. 그러나 이번 계약은 2028년까지로 그 기한을 초과해 법망을 교묘히 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최근 정례기자회견에서 "컬렉션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대다수는 정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정부 측인 국립예술원도 "일시적 외출"이라며 2028년에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 측의 날 선 발언은 미봉책에 불과할 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묘책에 근거한 건 아니다. 2028년 이후에도 칼로의 그림은 얼마든지 해외에서 전시될 수 있고, 이를 막을 방법도 현실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직접 매입을 주장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공립 교육과 의료, 사회 기반 시설에 투자할 자금도 부족한 멕시코 정부가 고가의 작품 컬렉션을 사들일 만한 형편이 없어서다.
미술계 전문가들은 겔만 컬렉션 전체 가치가 3억 달러(약 4천500억원)에서 5억 달러(약 7천500억원)로 추산한다. 특히 작년 11월 뉴욕 경매에서 프리다 칼로의 작품 '엘 수에뇨'(꿈)가 5천500만 달러(약 825억원)에 낙찰된 전례에 비춰볼 때, 이번에 반출되는 70여 점의 실질 가치는 조 단위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겔만 컬렉션의 보험 가액은 10억달러(1조5천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 올스 미국 웰즐리대 교수는 그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정부가 구매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프리다 칼로 그림 한 점을 사는 게 맞을까요, 아니면 그 돈으로 노후한 박물관들을 수리하는 게 맞을까요."
buff27@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