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사각형 넘어 무한으로…무수한 선으로 우주 그린 지근욱展

연합뉴스 2026-04-07 17:00:05

과거·현재·미래 경계 지운 시간의 층위…학고재서 '금속의 날개'

지근욱 개인전 '금속의 날개' 전시 전경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1시에서 5시 방향으로 힘차게 뻗은 사선이 있다. 이 선은 11시에서 시작해 5시 방향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반대로 5시에서 11시로 올라간 것일 수도 있고 그 사이에서 시작해 양방향으로 뻗어 나간 것일 수도 있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사실 알 수 없다.

시간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하지만, 이는 인간의 관점에서만 그렇다. 예컨대 지구 탄생부터 존재해온 금속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미래에도 남게 된다.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과거와 현재, 미래가 축적돼 있다.

화면 위에 무수한 선을 그으며 무한한 우주를 표현하는 작가 지근욱(41)의 개인전 '금속의 날개'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8일 개막한다.

이번에 나온 작품들은 '스페이스 엔진' 연작이다.

캔버스에 밑 작업을 하고, 자외선 프린터를 이용해 그러데이션을 만든 뒤 그 위에 자와 색연필을 이용해 반복적인 선 긋기로 화면을 채운 작품들이다. 밑 작업을 할 때 스테인리스 성분의 안료를 사용해 금속 느낌을 냈다.

지근욱 작 '금속의 장'

전시의 대표작은 총 24개 회화로 구성된 '금속의 장'(metallic field)이다. 같은 크기의 사각형 두 개를 위아래로 배치한 뒤, 이런 구조를 12쌍 가로로 이어 붙여 구성한 작품이다.

각 작품은 화면 안쪽으로 점점 좁아지며 중첩되는 사각형 구조로 구성돼 있고, 각 면은 빽빽하게 그어진 직선들로 채워져 있다. 선들은 일정한 간격과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미세하게 다른 색과 밀도를 띠어, 가까이에서 보면 손의 반복과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겉으로 보면 단단한 사각형 틀 안에 갇힌 듯한 구성이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 틀을 이용해 '닫힌 우주'라는 개념을 뒤집는다. 무수히 반복된 선들은 시선을 안쪽으로 끌어들이거나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듯한 시각적 진동을 만들어내며, 끝없이 확장되는 우주의 느낌을 준다.

지근욱 작 '금속의 길'

5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금속의 길'(metallic paths)은 11시에서 5시 방향의 사선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다. 그 위에 우상향하는 흰색 호가 이어져 있다. 마치 우주에서 둥근 지구를 바라보는 듯하다.

작가는 "영혼이 상승하는 이미지를 표현해 봤다"며 "관람객들이 작품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이 없고 처음과 끝도 없는 감각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근욱은 홍익대 판화과를 졸업하고 런던 예술대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아트&사이언스 석사 학위를 받았다. 홍익대로 돌아와 회화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곡미술관, 쉐마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했고, 202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사업 신진트랙, 2024년 성곡미술관 오픈콜 등에 선정됐다. 현재 숙명여대 회화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전시는 5월 9일까지.

지근욱 작가

laecor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