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헤즈볼라의 서아프리카 자금줄…레바논 이주민 네트워크

연합뉴스 2026-04-07 09:00:17

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며 시작된 전쟁이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빠른 종전을 장담했던 트럼프의 말이 허풍처럼 들릴 정도로,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지정학적 요소나 전략 등의 여러 요소가 있지만 다양한 저항의 축을 무시할 수 없다.

이란은 본토가 공격받기 전부터 외부 위협을 차단하는 전략을 취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를 키워왔다. 이번 이란과의 전쟁에서도 언젠가부터 갑작스레 나온 레바논의 헤즈볼라(Hezbollah)가 우리의 눈길을 끈다.

[그래픽] '저항의 축' 친이란 무장세력 현황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으로 1982년 창설됐다. 이후 레바논에서 확실한 정치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헤즈볼라의 군사력은 레바논 정부군의 군사력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체 무기 및 드론, 로켓 생산공장을 갖추고 있는 헤즈볼라의 병력 규모는 약 6만여명에 달한다. 레바논의 합법 정당이고 사회단체지만, 자국은 물론 같은 시아파 국가이며 우군인 이란과 연대하고 있다. 이란을 침공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 전투와 테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헤즈볼라는 정부 대신 지역민을 위한 생활 환경, 처우 개선 등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싸우다 다치거나 죽은 사람 혹은 가족에게 확실한 보상을 지원해준다. 지역민에 친화적인 헤즈볼라의 정책은 현지인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힘으로 정권을 차지한 탈레반과 혁명을 통해 정권을 달성한 이란과 또 다른 차원의 전략인 셈이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시아파 헤즈볼라가 서아프리카와 관련이 있다고 하면 무슨 말일까. 다시 말해 헤즈볼라의 자금 상당 부분이 서아프리카에서 오고 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우리는 서방과 중동과의 관계에서만 헤즈볼라를 봤을 뿐, 아프리카와의 관계 속 시아파 헤즈볼라와 이란은 간과했다. 헤즈볼라의 자금줄은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자금 규모가 가장 크고 비밀리에 헤즈볼라로 들어오는 곳은 코트디부아르와 기니를 중심으로 한 서아프리카 지역이다.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지도

이 지역은 돈이 되는 금과 다이아몬드 등을 자금으로 세탁한다. 그중에서도 코트디부아르는 자금 세탁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코트디부아르 내의 일부 레바논 이주 공동체와 무관하지 않다. 코트디부아르에서 레바논 공동체의 명성은 매우 높다. 국가 전체 경제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서아프리카 경제의 유통과 물류를 비롯한 금광 등을 가진 대지주들이 많다. 이들은 오랜 세월 구축한 네트워크를 통해 채굴된 금을 사들인다. 이후 두바이와 베이루트로 운송하거나 자금 세탁을 한다.

코트디부아르를 비롯한 서아프리카에서 레바논계 이주민이 정착한 것은 1897년부터다. 이후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 한 시기에 급증했다. 오스만제국의 억압과 가난을 피하기 위해 이들은 서아프리카로 향했다. 처음에는 마론파 기독교 계열 이주민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후 이슬람 시아파 이주민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1960년대 이전 식민 지배 당시, 프랑스어에 능통한 레바논 이주민들을 현지 중간 관리자로 발탁했다. 이들을 관리직에 앉히는 것이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이었다. 중간 관리자로서 레바논계 이주민의 일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프랑스인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하면서 상권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독립 이후에는 고국으로 떠나지 않고 프랑스인들의 자리를 차지했다. 서아프리카 농업과 유통·부동산·호텔·금융·자원 등의 모든 분야를 손아귀에 넣었다.

1960년 서아프리카 국가들 대부분이 독립한 이후에는 시아파 무슬림 이주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들은 각종 상권을 장악하고, 끈끈한 비즈니스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신뢰와 혈연, 고향 유대감을 기반으로 한 비공식적 네트워크가 이들의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 공동체가 됐다.

이처럼 코트디부아르에는 레바논 이주민, 특히 시아파 레바논 이주민들이 경제 분야의 모든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들은 고향의 가족이나 종교 단체에 송금하는 문화가 강하게 형성됐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레바논 본토의 일반 서민층 대부분은 생계를 위해 해외 송금에 의존하고 있다. 알자지라 기사(2023년 8월 23일자)에 따르면 레바논 인구의 약 80% 정도가 직·간접적으로 송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헤즈볼라는 광범위한 국제 금융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어, 현재 레바논의 침체된 경제에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직 중 하나다. 이 자금을 통해 서민층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둘째, 시아파에는 '쿰스'(khums)라는 교리가 있어 소득의 20%를 종교 공동체에 바친다. 코트디부아르의 성공한 레바논 사업가들은 사회적으로 선한 일을 한다고 여겨지는 헤즈볼라에 군사 활동 자금을 제공한다.

이란 역시 헤즈볼라를 통해서 서아프리카 네트워크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서방 세계의 눈을 피하며 자금을 관리하고 있다. 자동차 수출입과 다이아몬드·금 거래 같은 정상적인 사업뿐만이 아니다. 마약 밀매 등 합법과 불법을 오가는 네트워크를 거쳐 이 자금들이 레바논과 이란으로 유입된다. 2022년 미국 재무부는 코트디부아르에서 알카르드 알하산(AQAH)이 이러한 자금 관리와 송금을 해주는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AQAH는 레바논에 본부를 둔 헤즈볼라 연계 금융기관이다. 정식 은행이라기보다 '지하 은행' 또는 사회적 단체로 불린다. 1982년에 설립된 이 단체는 레바논 비정부기구(NGO) 허가를 받은 기관이다. 이들은 시아파 구성원에게 무이자 소액 금융 방식의 대출을 허용한다.

이 회사는 헤즈볼라의 재정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미 재무부의 제재 대상이 됐다. 2024년 말∼2025년 초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과정에서 AQAH 지점들이 대규모 폭격을 받기도 했다.

지난 3월 14일 이스라엘 공습에 파괴된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

AQAH는 2019년 레바논 금융 위기 이후 공식 은행 시스템 외부에서 운영됐다. 수십만 개의 계좌를 관리하면서 그 역할이 두드러졌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1970년대부터 사업을 확장해 온 타지딘(Tajideen) 가문이 거대 기업(식품 유통·건설·다이아몬드 무역·부동산 등)을 운영하며 헤즈볼라에 수억 달러를 지원해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았다.

헤즈볼라의 자금줄이 모두 AQAH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서아프리카 레바논 이주 공동체의 일부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이란과 헤즈볼라 축에 있어 외화 조달원이자 자금 세탁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 혹은 집단의 비즈니스 수익이 종교적 의무 '쿰스'를 통해 특정 집단의 정치·경제적 자금줄이 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레바논계 이주 과정에서 식민지 중재자로서 해야 할 역할 이외에도 왜 이런 자금 조달이 서아프리카에서 가능한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서아프리카의 노동 시장 특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비공식 경제(Informal Economy)의 높은 비중이다. 서아프리카 경제의 50% 이상은 정부의 감시 밖에서 돌아간다. 금, 다이아몬드, 카카오 등의 농산물 유통은 추적이 어려운 현금거래가 대부분이다. 이는 대부분의 저개발 국가에서 발생하는 특징이다. 따라서 자금 세탁이나 이동 과정을 정부 차원에서 추적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자본의 이동에서 레바논 이주민은 은행을 거치지 않는 '하왈라'(Hawala) 시스템을 활발히 이용한다. 기록이 남는 은행을 대신해 아랍인 특유의 비공식 송금망인 '하왈라'를 이용하는 것이다. 두바이에서 금을 판 돈을 현지 업자에게 주면, 레바논에 있는 파트너 업자가 그만큼의 현금을 헤즈볼라 측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요인은 지리적 취약성이다. 마약이나 다이아몬드, 금 등의 밀수품 이동이 쉽기 때문이다. 코트디부아르 주변국들은 가나를 제외하곤 대부분 정세가 불안하다. 코트디부아르는 말리와 부르키나파소를 비롯한 기니, 라이베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특히 말리와 부르키나파소는 전통적인 지역 연합체인 서아프리카경제연합(ECOWAS)에서 탈퇴했다. 이들은 자체 지역 기구 사헬국가연합(AES)을 만들어 독자 행보를 걷고 있다. 이 지역은 권위주의 정부하에서 수도 인근을 제외한 안보 공백을 여실히 보인다. 국경의 취약성은 고부가가치 밀수품 등이 자금 세탁 수단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된다.

마지막으로 레바논계 이주민들 간의 끈끈한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꼽을 수 있다. 코트디부아르를 비롯한 서아프리카와 두바이, 레바논을 잇는 레바논 거상들의 활동이다. 이들 중 일부가 헤즈볼라 등과 관계를 맺었다. 국가라는 공식 관계를 벗어나 사적 친분을 이용해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있다. 이는 다국적 이민자가 모인 코트디부아르라는 국가의 특이성이 어떻게 국제 네트워크와 관계를 맺으며 지역 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향후 세계 지역 질서를 이해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대한 더 다각적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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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기대 교수

현 부산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및 중앙도서관장, 프랑스 파리7대학 박사(언어역사인식론), 저서 '베르베르문명', '7인 7색 아프리카' 외 다수. 한국프랑스어권아프리카학회장과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3.0 과제 주관연구소 연구 책임자 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