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신경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 신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앞에 버튼이 하나 놓여있다. 내가 원할 때마다 버튼을 수시로 누를 수 있고, 누르지 않을 수도 있다. 버튼을 누르거나 누르지 않는 것은 정말 나의 의지일까.
행동의 모든 측면에는 선행 원인이 있다는 '결정론'(determinism)과 인간에게 행동을 조절·통제하는 '자유의지'(free will)가 있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은 과학계와 철학계에서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논쟁이다.
많은 연구와 실험 끝에 현재 다수의 학자는 '양립주의'(compatibilism) 견해를 취하고 있다. 세상은 결정론적이지만, 동시에 자유의지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동', '스트레스' 등의 저서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인 로버트 M. 새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간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원제 'Determined')에서 그는 다양한 학문적 근거를 들어 양립주의자들의 견해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자유의지가 환상에 불과함을 주장한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둘러싼 논쟁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는 1983년 미국 신경과학자 벤자민 리벳의 실험이었다. 피험자에게 앞에 놓은 버튼을 자유롭게 누르되, 누르기로 결정한 순간도 함께 알려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하기 0.2초 전에 버튼을 누르기로 결정했다고 보고했는데, 결정 0.3초 전에 이미 뇌가 버튼을 누를 준비를 했다는 사실이 뇌파로 확인됐다. 우리가 생각하기 전에 이미 뇌가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새폴스키는 이처럼 버튼을 누르는 단순한 행동을 포함해 모든 것이 이미 결정돼 있다고 주장한다. 몇 초에서 몇 분 전부터 몇 달 전, 몇 년 전, 청소년기와 아동기, 심지어 태아기나 몇 세기 전에서도 현재 의도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가령 판사가 식사를 한지 오래됐을수록 죄수에게 가석방을 허가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결정 직전에 느낀 배고픔이 사람을 더 깐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몇 분에서 며칠 전에 분비된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높을수록 공격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태아기에 엄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성인기에 우울증과 불안에 취약해질 수 있다.
요컨대 우리의 현재 모습은 "이전에 있었던 생물학과 환경 간의 모든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고 새폴스키는 말한다.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렇게 촘촘하게 쌓인 선행 원인의 영향권에서 뉴런이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새폴스키는 전공 분야인 신경과학을 포함해 심리학, 물리학, 역사학 등을 넘나들며 방대한 근거를 들어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치밀하게 펼친다.
새폴스키의 확언대로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범죄 행위 등에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우리 사회도 혼돈에 빠지는 것이 아닐까.
SF 작가 테드 창은 단편 '우리가 해야 할 일'에서 리벳의 실험에서 영감을 받은 장치인 '예측기'를 등장시켰다. 버튼을 누르면 1초 전에 불이 켜지는 장치로, 아무리 '기습적으로' 버튼을 누르려고 시도해도 여지없이 1초 전에 불이 켜진다. 자신들의 선택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모든 행동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새폴스키는 그러나 유신론자와 무신론자의 친사회성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자유의지가 없다는 믿음이 사람들을 날뛰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과거엔 개인의 잘못으로 여겨졌던 뇌전증이나 조현병 등에 대한 인식이 과학의 발전과 함께 변화했듯 개인의 의지와 무관한 행동 결과에 대한 인식도 언젠간 변화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봤다. 오히려 자유의지의 부재를 받아들인다면 더 나은 변화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낙관론을 펼친다.
내 행동의 주인이 지금의 내가 아니라는 주장에 수긍하는 것이 내키진 않을 수 있지만, 유머러스한 문장으로 풀어낸 새폴스키의 빈틈없는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간 당연히 여겼던 많은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문학동네. 양병찬 옮김. 648쪽.
mihye@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