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테크·우주과학·양자 등 다양한 분야서 창업…한국 기업과 협업에도 관심↑
지정학적·정치적 안정성이 강점…NSW정부 '이노베이션 블루프린트 2035' 제시

(캔버라·시드니=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12명을 배출한 '기초과학의 산실' 호주가 우수한 인재와 지정학·정치적 안정성을 바탕으로 딥테크 강국으로의 발걸음을 떼고 있다.
이론적인 기반은 탄탄하나 실용화 측면에서는 아직 발전이 필요한 만큼,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한국과의 교류도 적극적으로 도모하고 있다.
5일 연합뉴스가 찾은 호주 시드니의 증기기관차 폐공장을 개조해 만든 창업지원센터 '시카다 이노베이션즈'(Cicada Innovations)에는 클린테크·우주과학·광물추출·양자 등 각종 분야의 스타트업들이 각자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시카다 이노베이션즈'는 시드니대와 뉴사우스웨일스대·시드니공대·호주국립대 등 4개 대학의 지원으로 2000년 설립돼 현재는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30년 가까이 약 500곳의 벤처기업을 육성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이곳에 자리잡은 '앤트61'(ANT61)은 우주용 블랙박스인 '비콘'(Beacon)을 만드는 회사다.
위성 외부에 비콘을 달아두면 위성이 고장 나더라도 독립적인 전원과 통신망을 통해 지구와 계속 소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위성을 재부팅하거나 제어권을 되찾는 기능도 탑재됐다.
앤트61의 비콘은 이미 2024년 2월 스웨덴에서 발사된 위성에 탑재돼 실제 우주 궤도에서 성능을 입증한 바 있다.
당시 성공 덕분에 구매 문의가 잇따라 올해 8월 한국에서 발사 예정인 누리호 5호에 탑재될 스페이스린텍의 위성 등에도 앤트61의 비콘이 장착된다.
앤트61의 미하일 아사브킨 창업주는 "원래는 위성 연료를 재충전하는 로봇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위성업체들과 면담하면서 연료가 다 떨어지기 전에 고장 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비콘 개발로 연구 방향을 선회했다"며 "시카다와의 면담에서 사업의 추진 방향이 정해지는 등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돌아봤다.
'게가 엘리먼츠'(Gega Elements)는 최근 미·중 패권전쟁으로 인해 중요한 이슈로 부상한 '공급망 다변화'에 기여할 핵심 기술을 지닌 스타트업이다.
이들은 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을 알루미늄·아연 부산물에서 친환경으로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전략 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제한하면서 문의가 잇따르고 있으나, 대량 생산을 위해선 규모를 더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모하마드 아세피 게가 엘리먼츠 CEO는 "스케일업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 등과 협업을 위해 논의하고 있다"며 "비용 측면에선 거대 광업 회사들과 경쟁할 수 없지만, 안정성 측면에서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탄소 감축을 위한 주요 에너지원 중 하나 꼽히는 '수소'의 효율적인 운송이 가능한 금속 유기골격체를 개발한 '럭스 에너지'(RUX Energy)는 2년 안에 상업화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제한 강가 럭스 에너지 CEO는 "다양한 가스의 운반이 가능해 수소를 한국에 보내고 같은 골격체에 이산화탄소를 흡수시켜 뉴질랜드 등에 보내는 것도 가능하다"며 "대체에너지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뛰어난 수소 기술을 지닌 한국과 호주가 협업하면 기술적 측면 뿐만 아니라 밸류체인에서도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뉴사우스웨일즈대학과 시드니대학 자체 연구실 등에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술을 개발해 창업 전선에 뛰어든 수많은 과학자·혁신가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뉴사우스웨일즈대학에서 개발한 항로 예측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된 '카운터커런트AI'는 이미 유료 고객을 확보한 유망 스타트업이다.
카운터커런트AI는 생성형AI를 이용해 날씨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 선박이 항해할 수 있는 최적의 항로를 찾아낸다. 연료를 줄여 해운사의 비용 절감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탄소 또한 크게 감축할 수 있다.
쉐인 키팅 카운터커런트AI CEO는 "중국과 브라질을 오가는 340m 규모의 철광석 화물선 항로를 예측해 4만4천 달러와 325t의 탄소를 아낄 수 있었다"며 "연간으로 환산할 시 1천t 정도인데, 배 한척만으로도 나무 5만 그루가 흡수해야 하는 탄소의 배출을 막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드니대학에 기반을 둔 '이머전스 퀀텀'(Emergence Quantum)은 양자 컴퓨터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기반 인프라와 제어 시스템을 개발하는 업체다.
데이비드 라일리 '이머전스 퀀텀' CEO는 "미래의 컴퓨팅을 위해선 새로운 단계의 기술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그런 새로운 단계의 기술을 개척해 나가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창업자·CEO는 빅테크들이 주로 선택하는 미국·유럽 등이 아닌 호주를 창업의 근거지로 선택한 가장 주요한 이유로 '안정성'을 꼽았다.
호주가 지정학적으로도 주요 분쟁 지역들과 거리가 있어 안보 위협 등에서 자유롭고, 정치적으로도 국제 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아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호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호주로 건너와 창업한 이들도 많다.
아사브킨 앤트61 창업주는 러시아에서 우주 과학자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라일리 CEO는 마이크로소프트(MS) 양자연구소의 시드니 지부장이었으나, MS가 시드니 지부를 미국으로 이전하려 하자 팀원 20여명과 함께 MS를 그만두고 호주에 남았다.
라일리 CEO는 "호주 정부의 규제 프레임워크가 우리가 호주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며 "AI와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 협력의 기회도 많았고, 지역적으로 한국과 일본과 같은 역내 국가들과 잘 연결돼있어 국가적인 협력의 차원에서도 호주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불이 붙은 호주의 스타트업 창업 열기를 더 타오르게 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 또한 든든하다.
뉴사우스웨일즈주 정부는 '이노베이션 블루프린트 2035'라는 혁신경제 발전 지원 어젠다를 제시했다. 스타트업 아이디어들의 상용화를 지원해 향후 10년간 270억 호주달러(약 28조원)의 추가 투자를 유치하고 10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호주 수도 준주(ACT) 정부는 2만여명의 혁신가가 활동하는 비영리 혁신 거점인 '캔버라 이노베이션 네트워크'(CBRIN), 호주 최대의 사이버 보안 클러스터인 '캔버라 사이버 허브'와 같은 혁신 생태계 구축에 초점을 맞춘다.
※ 이 기사는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주관하는 '딥테크 관련 호주 R&D 및 정책 현장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bookmania@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