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가 폐교 사서 리모델링, 전국 첫 문화예술교육기관으로 변신
현직 웹툰작가 초빙 전문교육에 높은 호응…인접 시·군에서도 문의

[※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논산=연합뉴스) 이주형 기자 = "얘들아, 진짜 좋았는데 한 번만 더 해보면 더 나을 것 같아. 다 같이 'V' 동작하고 포즈도 조금 더 확실하게. 알겠지?"
지난달 30일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왕암리에 위치한 논산문화예술전문학교에서 만난 이지아(10·연무초 3) 양은 아이패드로 촬영한 영상을 확인한 뒤 친구들을 칭찬하며 독려했다.
문화예술 기초 수업을 받으러 이곳에 온 지아 양은 영화 예고편을 직접 제작해 보는 '무비박스' 체험을 통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았다고 한다.
지아 양을 포함한 아이들은 사뭇 진지한 회의 끝에 '연무초의 탐험가'로 영상 제목을 정하고, 구도와 연출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시종일관 미소를 띠었다.
학교 앞 계단에 앉아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 어르신은 "아이들 웃음소리를 들으니 이제야 봄이 오는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1956년 11월 왕암초등학교로 개교한 이 학교는 2002년 3월 가야곡초등학교에 통폐합된 이후 오랜 기간 폐교 상태로 방치됐다.
과거 아기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마을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 학교가 흉물로 전락한 것이다.
10여년간 뚜렷한 활용 방안 없이 방치되던 이 학교는 2019년 논산시가 매입하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교라는 오명을 벗기 시작했다.
논산문화예술전문학교는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2024년 문을 열었다. 폐교를 활용한 문화예술 교육기관으로는 전국 최초의 사례다.
학교 건물 두 동 중 1동에는 라운지, 레코딩실, 아트그라운드, 세미나실이, 2동에는 댄스실, 보컬랩, 무비랩, 아트리에 등 창작 활동을 위한 공간이 설치됐다.
2024년 10월 논산시청소년청년재단이 운영을 맡은 뒤 시범 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운영 기간은 1년 남짓하지만, 이 학교는 이미 논산을 대표하는 문화교육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논산 연무초등학교 학생들이 찾아와 문화예술 기초과정인 아트스쿨 수업을 듣고 있었다.
이 수업은 샌드아트, 영상 제작, 레코딩 등 12개 세부 프로그램(박스)으로 구성된 예술 기초 교육 과정이다.
초빙된 각 분야 전문가가 실제 작업 환경과 유사한 시설에서 강의한다. 학생들이 작업에 직접 참여하고 있어, 예술 교육과 진로 체험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날 학생들은 무비박스, 매직박스, 레코딩박스로 명명된 프로그램에 참여해 팀별로 영화 예고편을 제작하고, 전문 장비를 갖춘 녹음실에서 녹음과 편집을 경험하며 프로듀싱을 배웠다.
아트스쿨은 지난해에만 논산 지역 20개 학교와 17개 기관에서 총 2천181명이 다녀갔다.
시민과 청년을 대상으로 한 '예·채·능(문화예술로 채우는 능력)' 과정에서는 인공지능(AI) 활용, 디자인·영상 제작, 농산물 브랜딩, 전통주 빚기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지난해 311명이 참여했는데, 이 중에서도 지역 농민들이 자기 농산물이나 농장 이름·로고를 직접 디자인하는 농산물 브랜딩 과정이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현직 웹툰 작가가 강사로 참여하고, 실제 웹툰 제작 장비를 활용해 실습하며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웹툰 창작소' 과정은 이 학교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수강생과 학부모 반응이 뜨겁다.
"웹툰 작가를 꿈꾸는 자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서울이 아니면 학원에 다니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한 시민의 하소연을 계기로 백성현 논산시장이 학교와 함께 마련한 것인데, 사설 학원의 10분의 1 비용으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입소문을 타면서 논산뿐 아니라 부여, 청양, 계룡, 대전 등 인근 지역에서도 참여 문의를 하고 있다.

논산문화예술전문학교 최원혁 팀장은 "서울에 가지 않아도 문화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꿈꿨다"며 "문화적 경험 기회가 부족한 지역 여건에 맞춘 교육과정을 기획·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기초과정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 대한 체험과 적응을 돕고, 전문과정은 대도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현직 웹툰 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활동가를 섭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한 지 2년 차가 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게 최 팀장의 설명이다.
그는 "인구소멸 위기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단 한 명의 아이만 남더라도 형식적인 교육이 아닌 내실 있는 전문 교육을 제공하고 싶다"며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는 상생 모델을 계획 중인데, 레지던시 형태로 웹툰 작가가 상주하며 작업과 강의를 병행하고, 강사료로 생계를 유지하는 구조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논산시와 협의해 소멸 위기 대응 기금을 활용하거나 정부의 다양한 공모사업에 지원하는 것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oolee@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