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레이더] 국제유가 급등에 깊어지는 농어민 시름

연합뉴스 2026-04-05 08:00:14

면세유·비닐·비료 등 농자재 일제히 올라…영농철 농어민 '이중고'

정부·지자체 각종 지원책에도 농어민들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고양 화훼농가의 전기 온풍기

(전국종합=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장기화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봄철 파종기를 맞은 농민과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면세유는 물론 비닐, 부직포, 포장재, 비료 등 각종 농자재 가격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 농어민들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지원책을 내놓으며 충격 완화에 나서고 있으나 농어민들은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면세유 급등 첫날, 어업인들 막막

◇ 경유 면세유 17만원대→27만원대로…어민들 "조업 포기해야 할 수준"

기름값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어업인들은 조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유 면세유 가격은 200ℓ 기준 지난달 17만6천원대에서 지난 1일부터 27만7천원대로 무려 10만원 이상 인상됐다.

그나마 최고가격제를 적용해 낮춘 가격이다.

그러나 이번에 인상된 가격은 오는 9일까지만 적용되고 그 이후 새로운 가격이 적용될 예정이어서 중동전쟁이 계속되는 한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김진만 포항 구룡포연안홍게선주협회장은 "한 번 출항하면 10드럼(2천ℓ) 정도 사용하는데 기름값만 170만원에서 270만원으로 오르게 된다"며 "이러면 출어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멸치와 미역의 고장인 부산 기장군 대변항의 어민들 얼굴에 급등한 면세유 가격에 '설마가 현실이 됐다"는 듯 수심이 가득하다.

멸치 조업용 선박에 쓰는 고경유의 경우 200ℓ에 10만원가량, 미역 건조에 들어가는 저경유는 9만원가량 각각 올랐기 때문이다.

미역 채취용 소형 어선의 연료인 휘발유 역시 100ℓ에 4만원가량 올랐다.

최일천 대변항 어촌계장은 "이 정도로 가격이 오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유류비가 어업 경비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 이렇게 되면 남는 것이 없다"고 토로했다.

제주 서귀포항에는 갈치잡이 어선 30여척이 조업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정박해 있는 상황이다.

천남선 서귀포어선주협회장은 "보통 배 1척에 1억7천만원 정도 들여 기름 넣고 어구 등을 사 조업을 나가는데 지금 고기가 안 나서 인건비는 고사하고 출어 경비도 못 건지고 있어 마이너스 조업을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인천 연평도의 김정희 선주협회장은 "꽃게 조업 지역은 배로 왕복 4시간이 걸릴 정도로 거리가 멀다"며 "잡아도 돈이 되지 않고 앞으로 무얼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요소 비료 가격 급등

◇ 비닐 등 농자재 가격 인상에 수급난까지…영농철 맞은 농민들 '한숨만'

사정은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경기도가 파악한 농업용 경유 면세유는 지난달 2일 기준 ℓ당 1천103.95원에서 지난달 30일 1천367.10원으로 23.8% 올랐으며 이달 들어 더 오른 상태다.

비닐하우스 등 시설재배를 하는 농가들은 난방용 기름값 인상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경기 고양에서 화훼농장을 운영하는 김진호 씨는 "ℓ당 1천100원 하던 등유 면세유가 전쟁 이후 1천600원까지 올랐다"며 "분기마다 농협에서 4만ℓ를 공급받는데 예전에 4천400만원 하던 것이 6천400만원 가까이 든다"고 말했다.

전남 강진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박모(61) 씨는 "기름값이 너무 올라 하우스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중동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국제 유가 급등은 비닐, 부직포, 포장재, 비료 등 석유화학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봄철 파종기를 맞은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강원 춘천의 감자 주산지인 서면은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비닐 씌우기와 씨감자 심기가 한창이다.

그러나 잡초를 예방하기 위해 밭에 씌우는 비닐 1롤에 5만원가량 하던 것이 7만원 선까지 급등하는 등 농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며 농민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이 지역에서 경운기를 몰던 한 농민은 "비닐하우스에 드는 연료비부터 요소수, 비료, 비닐까지 안 오른 것이 없다"며 "상황이 안정되더라도 작물이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비닐하우스용 비닐의 경우 일부 농가에서 선금을 주고 구매 예약을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비료 역시 원료 수급이 어려워짐에 따라 업체들이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그 부담이 고스란히 농가로 향하고 있다.

특히, 요소 비료의 경우 현재 충분한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닐 수급 대란에 부담 커진 농가

◇ 정부·지자체 각종 지원책에도 농어민 불안은 여전

정부와 지자체는 유가 급등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농어민들을 위한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며 대책 마련에 절치부심하고 있다.

제주도는 농협의 면세유 할인 지원이 종료되는 9일부터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가 보조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해 유종별 평균 가격 대비 인상분의 40%를 사후 정산 방식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이는 2022년 유가 급등 때 20%를 자체 지원했던 것과 비교해 2배 높은 수준이다.

어업 분야에서는 유류비 지원 한도를 연안어선의 경우 기존 6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근해어선은 700만원에서 1천5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천시는 올해 14억7천300만원을 투입해 1천78척의 어업용 면세유 구입비를 지원할 방침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고유가로 어려움을 겪는 어업인의 유류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어업용 경유를 최고가격제에 포함했다"며 "이번 추경 예산에 유가 연동 보조금을 편성했으며 예산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남도는 농어업인의 경영 부담 완화를 위해 279억원 규모의 상반기 농어촌진흥기금 지원을 추진한다.

울산 울주군은 농업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유기질비료를 기존 63% 지원 규모에서 군비를 보태 80%까지 지원 규모를 확대했다.

경기도도 이달 중 정부의 '전쟁 추경'에 맞춰 신속한 1차 추경예산을 단행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이 같은 노력에도 농어민들은 보다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경남 진주시 농민회는 지난달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비료, 농약 등 필수 농자재 가격이 줄줄이 오른 상황에서 기름값 폭등은 농민들에게 농사를 포기하라는 선고와 마찬가지"라며 "유가 폭등으로 파산 위기에 처한 농민들을 위해 실질적 경영 안정 대책을 즉각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김성호 포항구령포수협 조합장은 "어업용 면세유가 아예 조업을 못 나갈 수준까지 올랐다"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전국 어업인들이 다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원도에서 대추와 감자 농사를 짓는 홍장현(60)씨는 "아무 잘못 없는 농민들이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며 "농사짓기가 전쟁 같은 상황에서 지자체나 농협의 긴급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전지혜 박정현 우영식 심민규 양지웅 장영은 최해민 황정환 형민우 손대성 김준범 박성제 김진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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