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더스] 김치, '어떻게 먹을지'고민해야

연합뉴스 2026-04-05 00:00:29

김치 만드는 옥스퍼드 '한류 아카데미' 수강생들

불과 두 해 전까지 나는 런던에서 파인 다인(fine dine) 일식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총 72석 규모로, 8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스시 바, 44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의 홀, 안쪽엔 20명이 앉을 수 있도록 아늑하게 분리된 다다미 형식의 파티룸도 있었다. 정통 일식 레스토랑이었지만 내가 인수하면서 한식 메뉴를 추가해 일식&한식 레스토랑으로 변신했다. 일식에 익숙한 런던 사람들에게 한식을 자연스럽게 알리려는 취지였다.

레스토랑의 위치는 런던 서쪽의 중심인 '해머스미'라는 곳으로, 서울의 신촌쯤 된다. 슈퍼리치들이 사는 지역은 아니지만 상류층 백인들이 고객의 대부분이었다. 영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배우 콜린 퍼스, 전임 수상 데이빗 카메론, 영국의 국민 여배우 쉴라 핸콕, 왕비 카밀라의 아들이자 영국 최고의 음식 평론가인 톰 파크 볼스,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문화 칼럼니스트인 메튜 노만을 비롯해 아나운서, 영화감독, 신문사 주필과 기자 등이 단골로 오곤 했다. 덕분에 한국의 조·중·동 같은 주요 신문사 3곳에서 한 면을 다 할애해 필자의 레스토랑과 음식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레스토랑은 2024년 4월 임대계약이 종료돼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다소 장황하게 얘기하는 이유가 있다. 영국인의 음식 문화, 더 크게 보면 유럽과 서양인의 관점에서 한국 음식이 풀어가야 할 숙제를 내가 고찰한 관점에서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류에 힘입어 한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마침 런던은 새로운 음식 문화와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용광로 같은 국제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장님 8번 테이블 손님들 김치를 벌써 다 먹었어요. 메인 음식이 나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해요?" 난감한 표정으로 직원이 내게 와서 말한다. 그러면 나는 "추가로 주문받고 가격도 추가하면 된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당시 일식을 주문받을 때는 김치에 대해 별도의 가격을 받았고, 한식은 메뉴에 따라 김치를 기본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김치의 레시피는 나의 할머니, 어머니를 거쳐 나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전수된 것이었다. 그러니 기본양념이 대동소이하다고 해도 맛이 조금씩 다르다. 배추를 비롯한 재료의 특성과 담그는 사람의 노하우, 섬세한 터치가 만들어내는 손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치를 담가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특강, 방송, 세미나, 워크숍, 잡지 등에서 내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동일한 레시피로 만들어도 모든 김치는 맛이 조금씩 다르다"고 말이다. 그러니 더욱이 한국 김치와 중국 김치는 절대로 같을 수 없고, 나는 열정을 다해 영국인들에게 한국 김치의 맛과 장점을 설파했다.

아직 메인 음식이 안 나갔는데 손님들이 김치를 벌써 다 먹었다는 얘기는 영국인 손님들이 올 때마다 거의 매번 반복되다시피 했다. 한국인이라면 음식이 다 나오기 전에 김치를 싹 비우는 일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내가 만든 김치를 먹는 영국인들의 태도와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는 사회과학적 연구방법론에서 자주 적용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고객들의 성별, 메뉴별, 점심·저녁 시간대별, 동석자 유형별, 포크와 젓가락 같은 도구별 등등 나름대로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어 이들의 식사 과정을 꼼꼼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결론은 명쾌했다. 김치는 단지 스타트(전식)일 뿐이란 것이었다. 이는 사실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을 좀 더 학문적인 방법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반찬'을 모르는 영국인들에게는 메인 요리에 앞서 나온 김치가 스타트(전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서양의 테이블 문화는 우리의 밥상 문화와 아주 다르다. 가볍게 먹는 'eat'인지 격식 있게 먹는 'dine'인지에 따라 다르고, 포장해가서 먹는 'Eat in'인지 식당에서 먹는 'dine out'인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영국에 살면서 관찰한 이 차이점을 필자는 지난 30여년간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에 전달했다.

이는 특정 지역의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음식 문화가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테이블 문화는 시간 계열형(Time Management)이다. 반면, 한국의 밥상 문화는 공간 전개형(Space Management)이다.

이처럼 상이한 음식 문화는 출발부터 다르다. 시간 계열형은 메뉴를 보고 전식과 주식과 후식으로 구분한 뒤 코스별로 먹는다. 이때의 기능적 장점은 먹는 사람이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Eat'과 'dine'의 결정적 차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교제를 위한 외식(social dine out)이 발생하는 이유로, 음식의 기능적 역할에 주목할 필요도 여기에 있다. 쉽게 말하자면 외식 상대는 누구인가, 이 외식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 외식의 관리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가 등이 변수인 동시에 항상 고려해야 할 상수라는 점이다.

필자가 런던에서 30년간 살면서 고찰한 시간 계열형의 백미 또한 이것이다. 3코스가 5코스가 되기도 하고, 5코스가 갑자기 7코스가 되기도 한다. 값비싼 와인이나 음식이 테이블 위에 나오는 것은 필연이다. 교제를 위한 외식이니 가격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쯤에서 김치를 다시 소환해본다. 스타트를 넘어 메인 메뉴로도 손색이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Eat과 Dine에서 김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3코스에서 김치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5코스에서 김치가 메뉴에 올라온다면 그 김치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무엇을 먹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의 'You are what you eat'이란 표현은 진부하다. 이제는 어떻게 먹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의 'You are how you eat'을 논의해야 한다. 한류에서 김치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김치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중심 역할을 결코 잃지 않았다"는 말은 내가 영국인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다. 그저 김치가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라는 이유로 김치의 세계화를 이야기한다면 부족하다. 모든 음식은 맛있고,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푸드 칼럼니스트 정갑식

푸드 칼럼니스트 정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