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은 하나"…세한도·품평문으로 본 추사의 예술세계

연합뉴스 2026-04-04 07:00:09

국보 '세한도' 영남 첫 공개…대구간송미술관서 7일 개막

여덟 제자 작품과 추사가 남긴 품평문…서화일치 예술관 조명

대구간송미술관 '추사의 그림수업' 전시전경

(대구=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공부가 쌓이면 글씨가 되고, 글씨가 완성되면 그림이 된다."

19세기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에까지 영향력을 미쳤던 추사 김정희가 평생 추구했던 서화일치(書畵一致)의 예술관과 학문적 태도를 보여주는 표현이다. 추사는 그림 같은 글씨를 썼고, 글씨 같은 그림을 그렸다.

추사 작품의 백미로 꼽히는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비롯해 그의 글씨와 그림들, 추사의 가르침을 받고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했던 제자들의 작품들을 함께 만날 수 있는 전시 '추사의 그림 수업'이 대구간송미술관에서 오는 7일부터 열린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세한도다. 세한도 하나만 보기 위해서라도 미술관을 찾아야 할 정도다.

세한도는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 씨가 202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뒤 서울에서 공개됐고, 2022년 세한도의 탄생지인 제주도에서 전시된 바 있다. 영남 지역에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844년 59세의 추사는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 중이었다. 제자 이상적은 중국에 사신으로 갈 때마다 구하기 힘든 서적을 찾아 추사에게 보내줬다. 추사는 이에 감사한 마음으로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 선물한다. 겨울날 소박한 집 한 채 좌우로 소나무와 잣나무가 서 있는 모습이다. 자신이 처한 물리적, 정신적 고통과 메마름을 먹과 거친 필선으로 표현했다.

추사는 세한도 옆에 쓴 글에서 자신을 '바다 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사람'이라 지칭하곤, 그런 자신에게 이전처럼 잘 대해 주는 제자를 송백으로 표하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낸다.

이상적은 이를 연경(북경)으로 가져가 청나라의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문인들에게 선보였고, 그들은 앞다투어 존경의 글을 발문으로 남겼다.

추사 김정희 작 '고사소요'

몇 점 남아있지 않은 추사의 그림들도 전시됐다.

'묵란'은 먹으로 그린 난이다. 품위와 격식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어 선비의 모습에 비유된다.

쓸쓸한 나무숲을 외로운 선비가 뒷짐을 지고 홀로 거니는 추사의 대표 산수화 '고사소요'와 메마른 붓질 속에도 깊고 윤택한 기운으로 숲속의 집과 정자를 그린 '소림모옥', '소림모정'은 추사 그림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추사체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계산무진'과 '삼십만매수하실'도 만날 수 있다.

팔인수묵산수도

추사 제자들의 그림과 이에 대한 추사의 비평들도 소개된다.

1849년 여름 추사가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자 그의 제자들은 스승을 모시고는 작품을 내놓고 비평을 청하는 품평회를 열었다. 이번 전시 제목을 '추사의 그림 수업'으로 삼은 배경이다.

'팔인수묵산수도'는 품평회에 나온 작품 중 지금까지 유일하게 전해진다. 이한철, 허련, 전기, 김수철 등 여덟 제자가 원나라 화풍을 바탕으로 그린 산수화 8점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추사는 꼼꼼한 비평문을 남긴다. 칭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외형적 기교를 걷어낼 것을 주문했다.

예컨대 김수철의 '계당납상'에는 '매우 마음에 드는 곳이 있지만 홍염(먹의 번짐)이 너무 과하다'고 지적하고, 조중묵의 '추림독조'에는 '그림의 경지가 화폭 안에 형세를 갖추었으나 네 그루 나무의 배치는 변화하고 생동하는 뜻이 없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허련의 '추강만촉'에는 '풍치가 있고 필의에 메마르고 껄끄러움이 없으니 기뻐할 만하다'며 극찬한다.

이한철 작 매화서옥도

품평회에 참여했던 여덟 제자 외에 추사 화파의 핵심 인물 조희룡의 그림들도 만날 수 있다.

유재소의 '죽림괴석'과 '관산한가', 유숙의 '매화서옥', 이한철의 '추산원천', 조중묵의 '운계선관'과 '승주심매', 허련의 '제주 망경루'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이 중 허련의 '제주 망경루'는 많지 않은 허련의 실경 작품 중 하나다. 유배 중인 스승을 찾아가 제주의 풍광을 보고 손가락에 먹을 묻혀 그린 지두화다.

추사 김정희 글씨 '계산무진'

18세기는 풍속화나 진경화가 발달한 조선의 미술 르네상스 시대였다. 그리고 이어진 19세기에는 돈 많은 중인들이 늘어나면서 그림은 더 상업적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를 살아온 추사는 당시의 그림에 매너리즘을 느꼈고, 전통으로 돌아가 문인화에 천착한다.

이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과거를 완전히 익힌 상태에서 새로움을 찾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랑 대구간송미술관 책임학예사는 "오히려 당대 가장 유행하던 겸재의 그림은 볼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급진적인 예술 사상을 가졌던 인물"이라며 "추사는 유행을 좇기보다는 공부를 통해 자신을 수련하고 비워낸 뒤 내면의 우주를 드러내는 경지를 추구했다"고 설명했다.

추사 김정희 작 '불이선란도'

이번 전시에서 세한도는 5월 10일까지만 공개된다. 이후엔 추사 묵란의 정점을 보여주는 '난맹첩'(5월 12일∼7월 5일)으로 교체된다. 또 6월 2일부터는 추사의 예술관 '서화일치'의 경지를 보여주는 '불이선란도'가 공개된다.

이랑 책임학예사는 "세한도가 없더라도 여전히 가치 있는 전시"라며 "세한도를 본 관람객은 난맹첩과 불이선란도를 보러 한 번 더 찾게 만드는 전시"라고 말했다.

전시는 7월 5일까지.

전시 전경

laecor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