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주상복합 주민들, 폐쇄 주장…"노숙인이 음주·노상방뇨"
'혐오시설' 취급 넘어 불매운동 갈등까지…구청 등은 뒷짐

(서울=연합뉴스) 조현영 기자 김유향 수습기자 = "우리 청량리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밥퍼'는 반드시 폐쇄돼야 합니다."
성탄절인 지난 25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 같은 글과 함께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노숙인과 고령층 행렬의 사진이 올라왔다. 논란이 일자 글은 이내 삭제됐지만, 현실 세계의 갈등은 오히려 더 증폭되는 상황이다.
1988년 답십리 굴다리에서 시작된 다일복지재단의 무료 급식소 밥퍼가 30여 년 만에 거센 위기에 직면했다. 낙후됐던 청량리역 일대에 신축 고층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서며 지역 지형도가 변한 탓이다.
새 주민들은 급식 시간대 일부 노숙인이 단지 내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위생 문제를 일으킨다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주상복합 입주민 권모(50)씨는 26일 연합뉴스와 만나 "밥퍼에서 도시락을 받은 사람들이 아파트 벤치에서 술을 마시고 소변을 본다"며 "어린이집이 1층에 있는데 애들도 놀라고, 주민들이 경찰이랑 경비실에 신고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민 송모(30)씨는 단지 내 깨진 술병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사정은 안타깝지만 단지에는 들어오면 안 된다"며 "입주민 사이에선 펜스를 설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갈등은 단순한 민원을 넘어 집단행동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일부 주민 사이에서는 밥퍼에 식자재를 기부하거나 봉사에 참여하는 인근 상점에 대해 이용을 거부하는 불매 운동까지 거론된다고 한다.

주민관 다일복지재단 사무총장은 "주상복합 상가에 팔고 남은 빵을 후원해주던 집이 있었는데, 입주민이 불매 운동을 한다고 들었다"며 "이번에 제가 인사드리러 갔더니 문을 닫고 나갔더라. 좀 아픈 부분"이라고 했다.
주 사무총장은 "그분들 중 일부는 저희를 '혐오 시설'이라고 말씀하신다"며 "아이들이 다니면서 노숙인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니까 좋지 않다고 학교 측으로 문제 제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미경 밥퍼나눔운동본부 부본부장은 "그쪽 주상복합 35층에 가서 내려다보니 밥퍼가 개미처럼 보이더라"며 "밥퍼 때문에 땅값이 내려간다고 하는데 이쪽이 건물이 낮아 오히려 뷰가 더 좋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밥퍼 측은 평일 위주 배식과 쓰레기 수거 등 자구책을 마련 중이지만, 200여명의 봉사 인력만으로는 모든 노숙인의 돌발 행동이나 개인적인 음주까지 통제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입장이다.
관할 동대문구와의 관계 설정도 난제다.
재단은 무허가 가건물 증축 문제로 구청과 행정소송을 벌여 2심까지 승소했는데, 이 때문에 구청이 과거와 달리 질서 유지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고 밥퍼 측은 말했다. 경찰도 노상방뇨 범칙금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해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부 어르신의 좋지 않은 행동은 민원의 소지가 충분히 있다.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먼저 지역에 들어온 시설에 나중에 들어온 주상복합이 나가라고 할 권한은 없다"고 지적했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길거리 배식'이라는 복지 모델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허 교수는 "미국은 노숙인 인권을 존중해서 길거리 배식을 하지 않는다"며 "동절기에 줄을 세우는 행위를 제한하고 식당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hyun0@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