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식 안전보장·돈바스 포기 불가 등 핵심쟁점 간극 여전
러 내부 '조롱하냐' 회의론…전황우위에 계속 시간끌기 전망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마련한 새 종전안 검토에 들어갔지만 수용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새 종전안도 국경선 변경과 서방의 우크라이나 안전보장을 둘러싸고 러시아의 입장과 상당한 간극이 있는 데다가 전장에서 주도권을 쥔 러시아가 핵심 요구에서 물러날 뚜렷한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크렘린궁은 25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푸틴 대통령이 미국에 다녀온 특사에게서 종전안 협의 내용을 보고 받았으며 이를 토대로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 미국과 협의한 20개항 종전안의 최신판을 공개하며 푸틴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새 종전안은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내주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포기해 사실상 항복으로 불린 10월 초안과 상당히 달랐다.
여기에는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요구했던 서방의 안전보장 확약과 국가재건 계획 등이 새로 포함됐다.
푸틴 대통령은 전쟁의 근본 원인이 서방의 동쪽 세력확장이라고 지적하며 우크라이나 내 서방 군사력 개입을 논외로 간주해왔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안전보장과 함께 양대 핵심 쟁점으로 거론되는 영토와 관련해서도 입장차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새 종전안에서는 러시아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미콜라이우, 수미, 하르키우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격전지 도네츠크주에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고 우크라이나가 병력을 물리는 면적만큼 러시아도 최전선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이는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를 통칭하는 돈바스에서 완전한 통제권을 확보하겠다는 러시아의 핵심 요구를 비껴가는 것이다.
러시아는 개전 후 루한스크를 완전히 장악했고 도네츠크도 4분의 3가량 차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도네츠크 중서부의 요새를 러시아 추가 침공을 저지할 마지노선으로 삼아 서부의 주요 도시에서 통제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줄어들지 않은 입장차를 고려할 때 러시아가 새 종전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에 대해 비관론이 제기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장에서의 진전으로 자신감을 얻은 데다 새 계획이 러시아 국민에게 승리로 포장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크렘린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러시아 내에서는 벌써 냉담한 반응이 나온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국제정세 전문가 알렉세이 나우모프는 텔레그램에 올린 글에서 새 종전안은 "(러시아에 대한) 완전한 조롱"이라면서 "의도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타협안'으로 제시한 다음, 실패하면 러시아 탓으로 돌리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는 새 종전안을 거부하더라도 협상 자체는 형식적으로 이어가며 시간 끌기를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종전 정권보다 훨씬 우호적인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악화를 막고 추가 제재를 피하며 전쟁 장기화 책임론을 차단하는 등 실익이 있다.
우크라이나에 거주 중인 분석가 볼로디미르 페센코는 NYT 인터뷰에서 "푸틴은 지금 단계에서 전쟁을 끝낼 의지도, 의미 있는 양보를 할 준비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크렘린궁에 트럼프 평화안 논의는 미국 대통령과 건설적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의 마찰과 갈등을 유발하기 위한 순전히 전술적인 게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경제는 고금리와 성장 둔화로 전쟁이 시작된 2022년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았지만, 아직도 대규모 병력 충원이 가능해 전선 유지에는 문제가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현 속도라면 러시아의 도네츠크 완전 점령에 약 18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그런 희망을 갖고 러시아가 당분간 기만적 협상을 이어가며 점령지 확대를 위해 시간을 끌 가능성이 크다는 게 서방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withwit@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