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인형 안고 웃는 아이…'고마저씨'는 이 맛에 산다

연합뉴스 2025-12-26 00:00:14

'고마우체국' 운영 박성일 대표 "제겐 매일이 크리스마스"

'고마저씨' 박성일 대표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강류나 수습기자 = "크리스마스는 자기 마음속에 있어요. 아이들 편지를 매일 보니까 저는 매일이 크리스마스죠."

'고마우체국'을 운영하는 '고마저씨' 박성일(58) 대표는 지난 2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고마우체국은 아이들의 그림을 인형으로 만들어주는 '나만의 인형' 프로젝트를 2014년부터 이어오고 있다.

올해 고마우체국에는 아이들이 꾹꾹 눌러 그린 그림이 담긴 편지가 800장 넘게 도착했다. 아이들의 사연이 담긴 편지를 여러 차례 회의 끝에 선정해 인형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신청 의도'에 맞게 원단을 찾는 데만 해도 품이 많이 든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이들 71명이 선물을 받았다. 한 아이는 '삼성전자에 다니던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갔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박 대표는 아이에게 휴대전화를 든 고양이 인형을 만들어 보냈다.

박 대표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아는 사람들만 알음알음 (신청)하다가 올해는 많은 부모와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나만의 인형 프로젝트는 산타클로스에게 엽서를 보낼 수 있는 핀란드 산타 마을의 '산타 우체국'에 착안해 시작됐다.

박 대표는 "어렸을 때 (산타 우체국에) 편지를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게 없었다"며 "편지를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뭔가가 돌아온다면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에게 인형은 먼저 떠나보낸 아내에게 바치는 사부곡(思婦曲)이기도 하다. 아내가 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며 함께 입원한 암센터 아이들에게 인형을 만들어주던 것을 이어받은 것이다.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편지 봉투를 열어보는 일은 이제 박 대표의 일상이 됐다. 그는 "아내의 뜻을 이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나도, '오로라'(고마우체국 직원)들도 누구보다 아이들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죽순이' 편지와 편지를 보낸 하연

인형을 받은 아이들은 박 대표의 바람처럼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고 있다.

경남 함양에 사는 9살 쌍둥이 하연·하준에게는 헤어진 고양이 '죽순이'가 돌아왔다. 동생이 고양이를 잃고 우는 모습을 본 하연이가 그림을 그려 보냈다. 어머니 이수정(40)씨는 "소중하고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인형을 받은 딸이 부럽다'는 어머니의 편지를 읽은 박 대표는 '어른이'들을 위한 선물도 준비하고 있다. 편지로 마음속 이야기를 솔직히 꺼낸 어른들에게 생일 선물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편지를 몇 개 꺼내 읽어줬더니 박 대표는 누구의 이야기인지 바로 기억해냈다. 그는 "선물을 받지 못한 친구들이 항상 마음에 걸린다"며 "실제로 '고마우체국'을 세워서 그동안 아이들이 보냈던 그림을 열람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젠가 자신이 보냈던 편지를 보러 찾아올 아이들을 박 대표는 기다리고 있다.

"고마저씨는 너희들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다 기억하고 있어. 잘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다시 찾아오렴."

인형 선물을 받은 다인이(왼쪽)와 시아

away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