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일하고…' 발언속 日서 10년전 대기업 여직원 죽음 주목

연합뉴스 2025-12-25 15:00:06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일본에서 10년 전 발생한 대기업 젊은 여직원의 죽음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고인은 명문 도쿄대를 졸업하고 2015년 4월 일본 최대 광고 기획사 덴쓰(電通)에 입사한 다카하시 마쓰리(사망 당시 만 24세) 씨다.

10년전 숨진 다카하시씨 모친, 기자회견

고인은 월 105시간에 달하는 초과 근무 등 과로에 시달리다가 같은 해 12월 25일 도쿄의 덴쓰 사택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목숨을 잃었다.

사망 전 그는 소셜미디어(SNS)에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반복해서 호소했다.

"하루 20시간 회사에 있으면 무엇 때문에 사는지 모르게 된다", "자고 싶은 것 외에는 감정을 잃어버렸다", "며칠이나 잘 수 없는 정도의 노동량은 너무 이상하다" 등의 글을 올렸다.

실제 사건 발생 후 노동 당국의 조사 결과 그는 같은 해 10월 9일∼11월 7일 약 105시간의 초과근무를 한 것으로 인정됐다. 심한 경우는 이틀간 연속해서 53시간 회사에 머물면서 회사 밖에는 17분 정도밖에 빠져나오지 못한 날도 있었다.

여론이 들끓자 노동 당국은 덴쓰가 불법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며 이 사건을 검찰에 넘겼고 당시 사장은 사임했다.

정치권도 장시간 노동, 과로사 문제에 대한 제도 개혁에 나섰다.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두 번 다시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장시간 노동 문제에 대한 시정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일본은 2018년에 초과 근무 시간을 최대 월 100시간, 연 720시간으로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일하는 방식의 개혁 관련법을 도입했다.

25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즈오카현에서 살고 있는 고인의 모친(62)은 전날 도쿄로 상경해 기자회견을 열고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더 추진해 모든 사람이 희망을 갖고 인생을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는 2024년도에도 산업재해로 인정된 과로사와 과로 자살이 159명에 달해 5년 만에 150명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들은 기자회견 내용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고인의 모친은 기자회견에서 최근 장기간 노동을 용인하는 듯한 풍조에 위기감을 표시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실제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 10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당선된 직후 "저 자신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을 버릴 것"이라며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임 후 국회 답변 준비를 이유로 새벽 3시에 출근하거나 한동안 수면시간이 "대체로 2시간부터 길게는 4시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총리 취임 후 근로 시간 규제 완화 재검토에도 의욕을 보였다.

다만 그는 나중에는 "결코 많은 국민에게 지나친 노동을 장려할 의도는 없고, 장시간 노동을 미덕으로 삼으려는 의도도 없으므로 부디 오해는 말아 달라"고 말하는 등 비판 여론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다카이치 내각에서 신설된 일본성장전략회의는 전날 열린 두번째 회의에서 '노동시장개혁 분과회'를 설치하고 노동시간 규제 등에 대한 논의에 본격 착수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 자리에서 "심신의 건강 유지와 종업원의 선택을 전제로 유연하고 다양한 근로방식을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검색사이트인 야후에는 고인의 10년 전 죽음과 다카이치 내각의 정책 방향을 다룬 지지통신 기사가 메인화면 정상에 올랐다. 댓글도 650건이 달렸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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