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올해 최악 강릉 가뭄이 남긴 교훈

연합뉴스 2025-12-25 09:00:03

가뭄에 지역 사회 전반 흔들려…'물 부족' 공포 시달린 시민들

지하수 저류 댐 설치·낡은 연곡 정수장 현대화·증설사업 추진

오봉저수지 단비의 흔적

(강릉=연합뉴스) 류호준 기자 = 올여름 강원 강릉을 덮친 기록적 가뭄은 '물 부족'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추상적인 위험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줬다.

장기간 이어진 강수량 감소와 무더운 날씨가 겹치며 하천과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고, 농업·생활·관광 전반에 걸쳐 지역 사회 전체가 흔들렸다.

연말을 맞아 강릉 가뭄의 상처와 이후 대응 과정을 되짚어본다.

단비 내리는 강릉지역 상수원 오봉저수지

◇ 오봉저수지 저수율 급격히 떨어지는 데 비는 '찔끔'

올여름 강릉지역 누적 강수량은 평년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폭염으로 땅이 급격히 메말라 갔지만 비는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오봉저수지 수위는 빠르게 낮아졌고, 인근 농업용수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고랭지 채소와 농작물은 생육 부진을 겪었고, 급기야 생육을 포기하는 농민들도 속출했다.

강릉 시내에서는 생활용수 사용 마저 제한이 걸리며 시민 불안도 커졌다.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지난 9월 12일 역대 최저치인 11.5%까지 곤두박질쳤다.

'관광 도시' 강릉의 이미지는 점차 '가뭄 도시'로 바뀌어 갔다.

하천 수량 감소로 경관 훼손 우려가 제기됐고, 여름 성수기를 가뭄으로 보낸 지역 소상공인과 관광·숙박업계는 울상지었다.

이재명 대통령, 강릉 가뭄 현장 점검

◇ 유례없던 가뭄…이재명 대통령 "재난 사태 선포하라"

가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중앙정부에서 나섰다.

지난 8월 30일 강릉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은 즉각적인 재난 사태 선포와 국가 소방동원령 발령을 지시했다.

산림청 초대형 산불 진화 헬기와 육군 치누크 헬기까지 동원돼 인근 수원에서 물을 퍼다가 오봉저수지에 퍼붓는 모습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갈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시가 대규모 수용가 대상 급수 제한 조치를 실시하면서 시민 불편이 극대화됐다.

태풍, 폭설, 산불 등 다양한 재난을 겪어본 강릉시민들도 이러한 가뭄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유례없던 가뭄에 시는 정책을 시시각각 바꿨고, 시민들은 혼돈을 넘어 분노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9월 중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가뭄이 점차 해갈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9월 22일 강릉시에 선포했던 가뭄 재난 사태를 공식 해제했다.

재난 사태가 선포된 지 24일 만이다.

야외 주차장서 햇볕·비바람에 노출된 기부받은 생수

◇ 가뭄 사태는 끝났지만 '되팔이' '생수 방치' 크고 작은 논란

가뭄 사태가 일단락된 이후에도 크고 작은 논란은 잇따랐다.

특히 일부 시민들이 기부받은 생수를 중고 거래 등을 통해 내다 파는 사례가 확인되면서 지역사회 안팎에서 눈총을 받았다.

극심한 가뭄 속에 전국 각지에서 온정의 손길로 모인 구호 물품이라는 점에서 '공동체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반면 같은 상황에서 주변 이웃들에게 생수를 무료로 나누거나, 복지시설 등에 전달한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상반된 모습은 재난 상황에서 기부 물품을 둘러싼 관리 체계와 시민 인식에 대한 과제를 함께 드러냈다.

또 가뭄 사태가 종료된 이후 한 달가량이 지난 시점까지도 기부받은 생수가 별도 관리 없이 야외에 방치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생수는 직사광선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용기 변형이나 내용물 변질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관리 소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일부 부적절한 사례가 논란을 키웠지만, 이를 계기로 재난 구호 물품의 배분과 사후 관리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교훈도 남겼다.

최악 가뭄 시기와 재난 사태 해제된 오봉저수지

◇ '두 번 다시 가뭄 사태 재발은 없다'

이제는 강릉 가뭄의 아픔을 교훈 삼아 재발 방지에 나설 차례다.

강릉시는 오봉저수지의 의존도를 낮추는 수원 다변화 사업을 본격 추진해 중장기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위해 지하수 저류 댐 설치와 낡은 연곡 정수장 현대화·증설사업을 본격화한다.

두 사업이 완료 시 강릉시 전역의 상수도 공급 능력이 대폭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홍규 시장은 "오봉저수지 중심의 용수 공급 구조를 과감히 바꾸겠다"며 "강릉 전역이 스스로 물을 확보·관리하는 독립형 도시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당 대표는 지난 17일 강릉을 찾아 '강릉 물 부족 예산 확보 보고회'를 열고 가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당과 정부의 노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지난 8월 강릉을 찾은 당시를 떠올리며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낸 그 장면이 저에게 굉장히 충격적이었다"면서 "(그때)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성과를 내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당시 강릉을 찾아 대책 회의를 한 점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직접 현장에 와서 토론하고, 묻고, 듣고, (해결책을) 지시했다"며 "저희가 확보한 예산을 보고드리는 것도 당 대표 덕분이 아니라 대통령 덕분"이라고 공을 돌리기도 했다.

강원도는 가뭄 재난 사태 선포 사례와 극복 과정을 종합한 '2025 강릉 가뭄 백서'를 발간했다.

재난 대응 과정의 성과를 동시에 기록하고 향후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김진태 도지사는 "가뭄이 재난이 된 최초의 사례이다 보니 누가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담당 부서에서 스스로 관련 문건들을 총망라한 가뭄 극복의 기록을 만들었다"며 "물관리 정책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강릉 가뭄 백서 소개하는 김진태 도지사

ry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