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생모로 과거엔 '백두산 여장군' 우상화…김정은 독자 위상 강화에 집중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북한이 최근 '선대 지우기' 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우상화 대상이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모 김정숙 생일 관련 보도가 관영매체에서 사라졌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는 김정숙의 생일인 24일 오전 현재까지 아무런 보도를 내보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신문이 매년 12월 24일에 김정숙의 생애를 회고하는 글을 게재하며 주민에게 그를 '귀감'으로 선전해 왔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변화다.
신문은 지난해 김정숙 생일에는 '친위전사의 고결한 한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수령을 받드는 충신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실천적 모범으로 보여주신 혁명의 위대한 어머니"라고 그를 찬양했다. 2023년에도 "위대한 수령님을 가장 순결한 마음으로 높이 받들어 모신 충실성의 귀감"이라고 강조했다.
평양 대성산혁명열사릉에 있는 김정숙 동상에 그의 생일을 맞아 간부와 근로자, 장병들이 헌화했다는 보도는 2021년을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김정숙 사망일인 9월 22일에도 추모 보도가 사라졌다. 지난해에는 노동신문이 김정숙 사망 75주기를 맞아 관련 보도를 실었지만, 올해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북한은 김정숙을 여성들이 따를 모범으로 여겨 과거 어머니날(11월16일)에도 김정숙 관련 언급을 꾸준히 해 왔으나 이 역시 사라지는 추세다. 북한은 올해 어머니날 김정은 위원장의 '애민정책'을 선전하는 데 집중했다.
김일성 주석의 부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모인 김정숙은 북한의 이른바 백두혈통 가족에서 유일하게 신격화돼 온 여성이다.
'항일의 여성영웅', '백두산 여장군'으로 불리며 과거에는 김일성·김정일과 '백두산 3대 장군'으로 묶이기도 했다.
북한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투쟁 전우였던 그를 "수령 결사옹위의 제일 귀감"으로 선전하며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실성과 충성심을 상징하는 인물로 내세워 왔다.
이런 김정숙의 존재를 북한 당국이 더는 조명하지 않는 것은 선대 수령의 우상화 강도를 눈에 띄게 낮춰 온 김정은 정권의 최근 움직임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김일성을 기리는 '주체 연호' 사용을 중단했고 김일성의 생일에 '태양절' 명칭도 쓰지 않고 있다.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참배하는 빈도도 줄었다.

여기엔 더는 선대 수령의 후광에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어느덧 집권 14년 차를 맞은 김정은 정권이 이제는 선대의 유훈에 기댄 통치를 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김정은의 독자적 위상 강화 및 통치 이데올로기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딸 주애가 등장한 상황과 관련짓는 시각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백두혈통 정통성 부각 차원에서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선대 우상화가 김정은 체제 정당성과 주민 정체성의 근간이다 보니 선대 지우기에 과도한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4일은 김정일의 인민군 최고사령관 추대일이기도 한데 이와 관련한 기사는 노동신문에 게재됐다.
신문은 "언제 어느 순간에 전쟁의 불구름이 밀려올지 예측할 수 없는 첨예한 환경 속에서 우리 인민이 적대세력들의 끈질긴 침략책동을 물리치고 사회주의 조국을 굳건히 수호할 수 있은 것은 위대한 장군님(김정일)께서 다져주신 불패의 군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kimhyoj@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