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화·조직으로 독립운동 토대 닦은 실천가 업적 재조명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독립운동의 실질적 기반을 구축한 이대위(1878~1928) 선생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기리는 '이대위의 날' 제정 캠페인을 본격 추진한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단장 박기태)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법적 보호·문화 보존·조직적 연대를 통해 재미 한인 사회를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만든 이대위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그의 서거일인 6월 17일을 '이대위의 날'로 제정할 것을 촉구하는 글로벌 캠페인을 추진한다고 24일 밝혔다.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난 선생은 평양에서 중등과정을 이수하고 1903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한인으로서는 최초로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1912년 샌프란시스코 한인감리교회 목사 안수를 받은 이후 교포사회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1918년 말 대한독립선언서에 안창호, 박용만, 이승만 등과 함께 미주지역 대표로 서명했고, 1919년 3월 당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던 신문인 신한민보를 통해 3·1독립만세운동과 그 이후 국내 상황을 미주 교포들에게 알리고 단결해 독립운동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정부는 1995년 이대위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2018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반크의 캠페인은 독립운동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실천가'의 역할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대위 선생은 사상과 조직을 현실에서 작동하게 만든 인물로, 법·문화·조직의 세 축에서 재미 한인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기반을 구축했다.
1913년 '헤미트 사건' 당시 미 국무부에 서한을 보내 "미국 내 한인은 일본의 강제 병합 이전에 도착한 독립적 국민"임을 논증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인국민회가 한국 임시정부로 공식 인정받는 성과를 끌어냈다. 1912~1920년에는 애국지사 200여 명, 유학생 500여 명, 한인 여성 70여 명의 신원 보증을 맡아 여권 없이도 미국 입국이 가능하도록 도왔다.
문화적 영역에서도 성과는 뚜렷하다. '국어는 민족의 정신'이라는 철학 아래 1915년 세계 최초의 한글 타자기를 발명해 174개 활자로 조판 방식을 혁신했고, 이는 독립운동 언론인 '신한민보' 제작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1910년 대한소학교, 1920년 한글학교 설립은 차세대의 언어·역사 교육 체계를 마련했다.
조직적으로는 1909년 대한인국민회 창립을 주도하고 1913~1918년 세 차례 미주 총회장을 맡아 해외 임시정부 역할의 기관을 운영했다. 1911년 '대도', 1913년 '신한민보' 주필로서 단합과 항일 의지를 설파했고, 192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참여로 독립운동 전 과정의 핵심 축을 담당했다.
반크는 이러한 공적을 근거로, 샌프란시스코가 이대위 선생의 업적을 공식 인정해 기념일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캘리포니아주가 도산 안창호의 업적을 기려 '도산 안창호의 날'을 제정한 선례를 들어, 이대위 선생 역시 국제사회가 공유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대위 선생의 활동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법적 보호를 스스로 구축하고, 언어·교육으로 정체성을 계승하며, 조직적 연대로 정치·문화적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는 다문화 사회에서 소수자 공동체가 직면한 과제와 맞닿아 있다.
박기태 단장은 "외교 문서 한 통으로 법적 지위를 지켜내고, 타자기 하나로 언론 독립의 기반을 만든 인물"이라며 "이대위 선생은 '실천하는 지성'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phyeonsoo@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