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최의택…이야기 배턴 주고받으며 쓴 합작소설

연합뉴스 2025-12-24 00:00:19

장편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사기꾼 좇는 여정 그려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호흡 좋은 두 작가가 서로 배턴을 주거니 받거니 릴레이로 소설을 써 내려가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요다)는 정보라·최의택 두 작가의 합작소설이란 새로운 글쓰기 시도로 주목받는 작품이다.

정보라는 2022년 '저주토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2023년 전미도서상 번역 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세계 문학계에서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너의 유토피아'로 세계 3대 SF(과학소설)상으로 불리는 필립 K. 딕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최의택은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2021년 제1회 문윤성 SF 문학상과 2022 SF어워드 장편 부문에서 대상을 받으며 SF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정보라의 작품을 읽은 뒤 SF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최의택은 정보라 작가의 '성덕'(성공한 덕후)을 자처한다.

이번 작품에서 정보라는 주인공 '보라'의 시선에서, 최의택은 또 다른 주인공 '의택'의 시선에서 배턴을 주고받듯 한 장(章)씩 소설을 이어 썼다.

물론 일본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처럼 두 명의 작가가 함께 작품을 쓴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두 작가가 이런 집필 방식으로 하나의 장편을 합작한 사례는 국내에서는 처음이라고 출판사 측은 설명했다.

소설은 한국 사회에서 큰 파장을 낳은 '국가산업 석유 시추공 프로젝트'를 소재로 삼았다.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결국 실패로 드러난 석유공 시추사업 과정에서 사기꾼이 기승을 부리고, 큰 피해를 본 이들도 있지 않겠냐는 문학적 개연성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평생 사기꾼의 먹잇감으로 살다가 시추공 분양 사기 사건의 가해자로 휘말리게 된 보라, 그런 보라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맡긴 의택이 의기투합해 진짜 사기꾼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서로를 의심하면서도 믿을 구석이라곤 서로밖에 없는 두 사람의 여정은 순탄치 않다.

삐걱대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이어지고 서사 곳곳에 숨은 블랙 유머가 매력을 발산한다.

이야기의 전개 또한 매끄럽다.

의기투합한 두 작가는 치밀한 사전 조사와 긴밀한 소통으로 작품의 소재를 찾아 얼개를 만들고, 각자의 개성을 살려 이야기에 살을 붙이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소설은 시종 한편의 로드무비처럼 경쾌한 호흡으로 읽힌다.

한국 사회가 사기라는 범죄에 얼마나 구조적으로 취약한지, 사기가 사람들을 어떻게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지 구멍 난 사회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요다. 260쪽.

kih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