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선물을 떠나 그냥 너무 재미있다"

연합뉴스 2025-12-23 06:00:07

송년회서 1만원 이하 선물 교환 놀이 유행

SNS 타고 퍼져…교환 과정 찍어 공유까지

고물가 시대 '스몰 기프트' 나누며 친목 다져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립밤, 버섯 모양 열쇠고리, 헬로키티 파우치, 핸드크림, 양말, 휴대용 장바구니….

"하나, 둘, 셋" 구호가 끝나자마자 참가자들이 준비해온 이런 작은 선물들이 바닥으로 쏟아진다.

"우와", "이건 뭐야" 하는 탄성과 함께 참가자들은 웃으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재빠르게 하나씩 집어 든다.

지난 9일 인스타그램 릴스에 올라온 한 연말 모임 영상이다.

지난달부터 인스타그램 릴스와 유튜브 숏츠에는 '연말 스몰 기프트 교환'이라는 제목으로 이와 유사한 영상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1만 원 이하의 선물을 서로 주고받고, 그 과정을 찍어 공유하는 이른바 '스몰 기프트 교환' 트렌드다.

고물가 시대, '부담 없는' 소액의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송년회 방식이 올 연말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연말 선물 교환 이벤트에서 주고받은 선물들

올해 송년회 날짜를 잡는 여러 단체 채팅방에 가장 먼저 올라온 건 장소·메뉴도 아닌 선물 가격의 상한선이다. 대개 1만 원 이하로 책정된다.

교환되는 선물은 캐릭터 문구류와 양말, 열쇠고리, 잠옷, 커피 드립백, 향초처럼 일상에서 한 번쯤은 쓰게 되는 소소한 물건들이다. 배추 모양 담요나 닭 다리 모양 대형 쿠션처럼 일부러 엉뚱한 아이템을 고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트렌드의 배경에는 숏폼 영상이 있다.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과 예상치 못한 물건에 대한 반응들이 30초 안팎의 콘텐츠로 만들어져 속속 게시되고 있다.

댓글에는 "이번 모임에 이거 어때"(인스타그램 이용자 'ji***'), "우리도 내년에는 저렇게 해보자"('hyo***') 같은 반응이 달린다.

단순히 선물을 주고받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을 기록해 공유하는 것까지가 하나의 이벤트다.

지난 13일 트위터에 올라온 '연말 선물 교환' 후기

핵심은 선물 자체가 아니다.

누가 어떤 선물을 가져갈지 모르는 상황, 선물을 공개하는 순간의 반응, 그 과정에서 오가는 대화까지 전 과정이 하나의 놀이처럼 구성된다.

값비싼 선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작은 아이템 하나로 연말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과정을 즐기는 문화'로 부상한다.

고물가 상황도 이런 흐름과 맞물린다.

고가의 선물 대신 1만 원 이하의 물건으로도 충분히 연말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호응을 얻는다. 실용성 없거나, 엉뚱한 선물이라도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이벤트가 된다는 인식이 공유된다.

지난 16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선물 교환 영상에는 "선물을 떠나 그냥 너무 재미있다. 저런 거(선물 교환)로 마음 맞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냐"(이용자 'gae**')는 댓글이 달렸다.

성남시에 거주하는 전모(51) 씨는 지난달 말 친구 5명과 함께 연말 모임을 갖고 선물 교환 게임을 했다. 간장 김과 두피 영양제, 민트 사탕, 장바구니, 잠옷 등 각자 인원수에 맞춰 준비한 작은 선물을 한데 모아 교환했다.

전씨는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오랜만에 연말에 모여 소소한 선물을 주고받고 웃는 시간이 학창 시절 마니또 게임을 떠올리게 했다"며 웃었다.

직장인 정모(25) 씨는 이달 초 송년회 이벤트로 팀원들과 선물 교환을 진행했다. 가방에 다는 키보드 모양의 작은 열쇠고리나 마우스 패드 등아기자기한 선물이 오갔다.

정씨는 "큰 선물이 아니어서 부담이 없었고, 함께 선물을 나누면서 팀원들과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25) 씨도 이달 말 친구들과 송년회를 앞두고 '1만 원 이내 선물 준비'를 규칙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어떤 선물을 가져올지 벌써 궁금하다"며 "꼭 비싼 선물이 아니어도 게임처럼 선물을 주고받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찍는 것 자체가 예능처럼 느껴져 재미있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스몰 기프트 교환은 '화이트 엘리펀트 룰'(White Elephant Rule)과 비슷하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널리 알려진 '화이트 엘리펀트 룰'은 정해진 금액 안에서 준비한 선물을 참가자들이 무작위로 뽑아 교환하는 연말 놀이 문화다. 선물의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거나, 원치 않는 선물이 다시 교환되는 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펼쳐져 재미를 준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연말·연시에 서로 안부를 묻고 선물을 교환하는 기능 자체는 계속 존재해 왔지만, 고물가 시대이다 보니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그 기능을 소비하려는 방식으로 소액 선물 교환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사실 우리나라에서 선물 교환 문화가 일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젊은 세대의 경우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단순히 안부를 묻거나 인사를 하는 차원을 넘어, 일상에서 필요한 소소한 제품이나 편의용품을 구매해 서로 나누는 방식으로 문화가 조금 더 발전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요즘은 SNS를 통해 다양한 제품 콘텐츠와 정보가 워낙 많이 노출되다 보니 내가 직접 돈을 주고 일부러 사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받아보거나 교환해볼 수 있는 선택지가 생긴다"며 "이처럼 제품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점도 이런 선물 교환 문화가 나타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밝혔다.

minj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