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실 개인전…아라리오갤러리서 출산 주제 회화 10편 선보여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출산이라는 강렬한 경험을 회화로 풀어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에서 마련한 이은실(42) 개인전 '파고'는 작가가 경험한 출산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파동을 10편의 회화로 선보이는 자리다.

'에피듀럴 모먼트'는 폭 7.2m의 수묵 채색 작품으로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다. 작품 제목은 일명 무통 주사라 불리는 마취제 이름이다. 작가는 출산 과정에서 마취제가 신체에 투입되는 순간의 환각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녹색 안개가 낀 신비로운 산 위로 용 또는 거대한 뱀처럼 보이는 생명체가 꿈틀거린다. 화면 왼쪽에는 벌어진 골반이 보이고, 생명체는 이 사이를 통과하려고 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고통 속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맞아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정신이 파편화된 순간을 그린 것"이라며 "전쟁터 같은 상황인데 머릿속에서는 또 다른 작용이 일어나는, 신체적 고통에 환상이 주입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전운'과 '인생의 소용돌이'는 출산 직전에 나타나는 진통을 그린 작품이다. 푸른 안료를 중첩해 깊은 바다의 빛깔을 구현하고, 수면 위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다.
'전운'에서는 풍랑이 다가올 바다의 풍경으로 통증의 전조증상을 표현했다면, '인생의 소용돌이'는 강력한 소용돌이로 분만을 알리는 '진진통'을 그렸다.
또 '멈추지 않는 협곡'과 '생사의 기로'는 출산 과정에서 벌어지는 출혈을 용암이 흐르는 모습처럼 담았다.

'고군분투'와 '절개', '흔적', '넘치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태도'는 출산 이후 신체에 남은 흔적들을 작품으로 남겼다.
물리적 압력으로 실핏줄이 터진 눈(고군분투)과 출산 당시 칼로 생살을 벤 흔적(절개), 임신으로 인해 생긴 튼살(흔적), 산후 유선염(넘치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태도) 등 일시적으로 발생하거나 타인에게 잘 보이지 않는 상흔을 화면 위로 불러와 직면하게 했다.
작가는 "사회적으로 출산을 고귀하고 숭고한 것이라 하고, 마치 모든 여성이 겪는 보편적인 일이라 하지만 개인에겐 생사를 넘나드는 사건"이라며 "좀 오래된 일이지만 이처럼 강렬한 체험을 작가로서 꼭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2006년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2014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제29회 중앙미술대전,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14년 리움미술관 '아트스펙트럼 2014'에 참여작가로 선정됐고 2019년 제19회 송은미술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동양화를 기반으로 일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말하지 않는 주제를 회화로 풀어내고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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