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안고 평생 나눔실천' 이동한 대표 "단순기부보다 자립역량 키워야"

연합뉴스 2025-12-22 10:01:11

소아마비 극복하고 성공한 장애인 복지 대부…"나눔 실천한 모친의 자비 보살행 계승"

네팔 빈곤층 자립 돕는 염소보내기 후원 참여…지구촌나눔운동 개도국 돕기에 누적 10억원 쾌척

이동한 메이즈랜드 대표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빈곤층 이웃에 빵을 주면 당장 굶어 죽는 것은 막을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립할 방법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카스트 제도로 차별받는 최하층민 달리트(불가촉천민)의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란 생각에 주저 없이 후원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춘강을 설립해 38년간 어려운 이웃의 자립을 도우며 '장애인의 대부'로 불린 이동한(74) 제주 메이즈랜드 대표는 최근 국제개발 NGO 지구촌나눔운동(이사장 김혜경)과 사랑의 열매나눔이 함께 진행하는 '네팔 희망의 염소 보내기'에 108마리 염소(2천160만원)를 기부했다.

이 염소들은 지구촌나눔운동이 네팔의 남부 떠라이 지역에 사는 달리트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한 '염소저축은행' 사업에 쓰이게 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108가정에 염소를 보급해 우유 생산과 번식 등을 통해 지속적인 소득 창출을 돕는다. 염소 지원과 함께 기초 교육과 마을 조직화 프로그램을 병행해 지역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2살 때 소아마비 판정을 받아 지금도 걸을 때 보조기와 지팡이에 의존해야 하는 이 대표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왔지만, 오히려 누구보다도 장애인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직함은 전국 1천300여개 사회복지법인을 아우르는 한국사회복지법인협회 회장이다.

이 대표가 네팔 기부를 결심한 것은 최근 메이즈랜드에 새로 오픈한 인공지능(AI) 체류형 교육모델인 '런케이션(Learn+Vacation)'관을 오픈한 직후 지구촌나눔운동으로부터 네팔 달리트 아동의 열악한 상황을 담은 영상을 접하고서다.

그는 영상에서 달리트 아동이 태어난 신분 때문에 학교조차 제대로 다닐 수 없어서 문맹률이 100%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 대표는 "한국도 과거 최빈국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자식 교육을 최우선으로 했고 그때 외국의 원조 등 누군가의 '마중물'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며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아이들인데, 어떤 아이는 AI를 배우고 어떤 아이는 카스트 제도에 묶여 꿈조차 꾸지 못하는데 그 격차를 줄이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교육 격차가 미래 격차가 된다'는 생각에 모든 기부는 단순한 도움을 넘어 교육·기술 전수 등을 수반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네팔 빈곤층에 염소 보내기 기부한 이동한 대표

그는 2013년 에티오피아 딜라 지역의 장애아동을 돕는 일을 후원하면서 지구촌나눔운동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태국과의 국경 분쟁으로 피해가 극심했던 미얀마 카렌주의 장애인 의수족 지원, 케냐 장애아동 특수학급 교실 개보수와 휠체어·버스 지원, 몽골 장애인 시설 환경 개선 및 자일갈란트 지역 가축은행 사업 후원 등 지금까지 10억원 가까이 후원했다.

이 대표는 사회적 편견으로 장애인의 취업 등을 제한하던 1980년대에 직업재활과 자립사업의 일터를 일구며 제주도 최초의 장애인종합복지관과 장애인근로센터를 설립하는 등 국내외 어려운 이웃이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도록 돕게 앞장서 왔다.

그가 평생을 국내외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게 된 데는 모친 고 오태인 여사의 가르침을 받들어서다.

모친은 소아마비로 걷기 어려운 그의 다리를 16번의 수술과 치료를 받게 해 한 쪽은 보조기를 착용하고 한쪽은 목발을 의지해 걷을 수 있게 하고 또 늘 배움을 게을리하지 말고 자립해야 한다고 의지를 북돋아 주었다.

일찍 남편과 사별 후 홀로 포목점을 운영하며 6명의 자녀를 키운 모친은 평생 이웃 돕기에도 앞장섰다.

이 대표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굶주리거나 사정이 어려운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고 밥 한 끼라도 먹이거나 재워 보냈고 어려서부터 그런 모습을 보고 컸다"며 "그래서 나 역시도 어머니의 자비 보살행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 대표는 20살에 제주도 최초로 계량사 자격시험에 합격해 계량사가 됐고, 최연소 상수도 시공기술자 자격증을 따 상수도 사업과 택시미터기 사업으로 자립했다. 20대 중반에는 제주공항 조경사업을 맡아 큰돈을 벌었지만 안락을 추구하지 않고 장애인 복지 사업에 매달려왔다.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을 맘속 깊이 간직해온 그는 네팔 아동을 돕는 데 염소 기부는 시작일뿐이라며 "향후 네팔 아이들이 교육받아 꿈 그리기 공모전을 해 출품작을 메이즈랜드에 전시하고 수상자를 초청해 한국 아이들처럼 AI 체험관을 경험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메이즈랜드 AI 체험관은 SK플래닛과 협력해 제주도 전통 설화인 '서천꽃밭'을 선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네팔 아이들이 제주에서 서천꽃받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AI 기술 체험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며 꿈을 심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이들이 다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지만 평등을 꿈꾸며 살 권리가 있다고 본다"며 "저의 작은 기부가 연말을 맞아 개도국 어려운 이웃들이 생존을 넘어 행복을 추구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지구촌나눔운동 관계자는 "이 대표는 물질적 지원을 넘어 교육과 문화교류를 통한 지속가능한 변화에 앞장서고 있다"며 "메이즈랜드의 교육 인프라와 국제개발 협력이 결합하면 한국형 글로벌 나눔 모델의 새로운 사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대표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국민포장 및 국민훈장석류장을 받았다. 2012년에는 삼성호암상 사회복지상 수상자로 선정돼 받은 3억원의 상금을 전액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해 '아너 소시아어티' 회원이 되기도 했다. 이번 네팔 기부에는 자녀들도 함께해 '가족 나눔 문화' 실천에도 앞장섰다.

제주도 사회복지법인 '춘강' 설립 38주년 기념식

wakar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