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노래 전시회' 최성원 "히트곡 아닌 작품 만들고 싶었죠"

연합뉴스 2025-12-22 00:00:17

전인권·이광조 등 발굴한 컴필레이션 앨범 40주년 리부트

"작가주의 지향, 보석 같은 뮤지션 소개"…여유와 설빈·양지원 등 참여

'우리 노래 전시회' 낸 들국화 최성원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우리 노래 전시회' 노래들이 오랜 생명력을 유지한 까닭이요? 그 비결은 잘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저는 '히트곡'이 아닌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1980년대 전인권, 이광조, 시인과 촌장 등 숱한 스타 뮤지션을 발굴한 컴필레이션 앨범 '우리 노래 전시회'가 첫 앨범 40주년을 맞아 리부트 음반으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온다.

'우리 노래 전시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노래를 모은 앨범으로, 40년 전인 1985년 1집을 시작으로 4집까지 이어졌다.

1집 수록곡의 면면을 살펴보면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이광조), '그것만이 내 세상'(전인권), '매일 그대와'(강인원), '그댄 왠지 달라요'(박주연) 등 지금껏 사랑받는 명곡들이 수두룩하다.

당시 프로듀서를 맡아 작사·작곡에 참여하고, 후일 밴드 들국화의 베이시스트로 활약한 최성원이 이번 40주년 리부트 앨범 제작도 주도했다.

최성원은 21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런 기회가 아니면 묻혀가는 좋은 노래와 훌륭한 뮤지션이 너무 많다. 팬덤을 가졌거나 미디어에 쉽게 노출되는 이들이 아닌 이상 노래를 알리기가 쉽지 않다"며 "보석 같은 친구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985년 1집에 참여한 가수들은 앨범 발매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후 우리나라 대중음악에 큰 획을 그은 뮤지션으로 성장했다.

최성원은 "제가 추구한 노래는 TV에 나오는 히트곡과는 결이 달랐다"며 "뮤지션을 한 명의 '작가'로 대접하면서 '작품'을 전시한다는 생각에서 앨범명도 '우리 노래 전시회'라고 지은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거의 처음으로 작가주의를 지향한 시도가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우리 노래 전시회' 리부트 앨범 재킷 이미지

그러면서 "히트 가능성이 아니라 작품으로 대중가요를 대하다 보니 노래의 생명력도 오래 간 것 같다"며 "히트곡은 한 번 성공하면 의외로 쉽게 잊히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번 앨범에는 '삶과 생각'을 주제로 신진 가수들이 부른 노래 11곡이 실린다. 수록곡들은 참여 가수의 자작곡과 최성원이 작곡한 노래로 구성됐다.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은 포크 듀오 여유와 설빈, 가수 레이디 온 더 힐, 남북정상회담 만찬에서 '고향의 봄'을 부른 오연준, 걸그룹 스피카 출신 양지원 등이 가창에 참여했다.

참여 가수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성원이 잘 아는 '음악을 잘하는' 이들이면서, TV 등 미디어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이 주를 이룬다. 그중 데보라, 레이디 온 더 힐, 인태은은 예명을 최성원이 직접 지어줬다고 한다.

최성원은 "아무래도 음악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하다 보니, 공연 등에서 눈여겨본 젊은 친구들이 있었다"며 "저는 운명을 믿는 편인데, 여러 인연으로 친하게 된 젊은 가수들이다. 대대적인 오디션을 열거나 특별한 기준을 가지고 뽑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최성원은 특히 이번 앨범에 후배 가수들을 향한 헌정의 마음도 담았다. 그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아이유 등 글로벌 K팝 붐의 주역 100명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추후 앨범을 전달할 계획이다.

최성원은 "후배 가수들이 미국 빌보드 차트 등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한국 문화의 힘을 후배들이 꾸준히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이처럼 우리나라 문화를 드높여준 데 대한 감사와 응원을 담은 취지"라고 설명했다.

최성원은 지난 1973년 양병집, 임용환 등과 함께 청평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해 노래한 것을 시작으로 반세기 넘도록 음악에 매진해왔다. '우리 노래 전시회'와 들국화의 숱한 명곡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고, 1988년 1집 이래 솔로 가수로도 활약해 '제주도의 푸른 밤' 등의 히트곡을 냈다.

'우리 노래 전시회' 낸 들국화 최성원

50년 이상 음악의 길을 걸은 소회를 묻자 그는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음악은 제게 그냥 '공기' 같았다. 음악을 하려고 노력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 살아갔다"며 "제가 가수의 길을 팠다면 가수로서 입지가 확고해졌을 것이다.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곡을 만들거나 연주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고 돌아봤다.

반짝 빛났다 스러지는 노래가 아닌 수십년간 사랑받는 곡을 만들어낸 그에게 '훌륭한 프로듀서'의 조건을 물었다. 음악성을 인정받으면서도 오래도록 대중에게 불리는 노래를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든 창작자의 꿈일 것이기 때문이다.

최성원은 잠시 생각하다 '히트곡보다 작품'이라는 맨 처음의 대답으로 되돌아갔다.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프로듀싱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봉준호 감독이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것이 참 마음에 와닿았어요. 제가 마음속으로부터 좋아하는 노래를,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하고픈 그 마음이 바로 프로듀서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히트곡을 만들어 수익을 내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좋은 곡을 소개하고 싶은 열정에 방점이 찍힌 프로듀서도 있거든요."

ts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