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노제에 유족·동료 100여명 참석…후배들 '꽃밭에서' 추모곡 합창
박정자·손숙, 손 맞잡고 눈물…길해연 "고인에게 연극은 가장 진실한 땅"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최주성 기자 = "윤석화 선생님에게 연극은 언제나 가장 진실한 땅이었습니다."
길해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추도사를 낭독하자 노제에 참석한 유족과 동료 예술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1세대 연극 스타'인 배우 윤석화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노제가 21일 오전 서울 대학로 한예극장(옛 정미소 극장) 마당에서 엄수됐다.
오전 10시께 치러진 노제에는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배우 박정자와 손숙,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연출가 손진책 등 동료 예술인 1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배웅했다.
고인이 2017∼2020년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의 길해연 이사장은 추도사에서 "선생님은 '연극이란 대답할 수 없는 대답을 던지는 예술'이라 말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건넸고, 그 질문이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며 "오늘 우리는 무대에 대한 열정으로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연기 인생을 사셨던 한 명의 배우이자 한 시대의 공연계를 이끈 위대한 예술가를 떠나보낸다"고 애도했다.
그는 이어 "윤석화 선생님이 남긴 무대와 질문 그리고 예술과 사람을 향한 사랑은 한국 공연예술의 역사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 숨 쉬며 후배 예술인들과 관객들의 길을 밝혀줄 것"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길 이사장이 슬픔에 겨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추도사를 간신히 이어가자, 유족과 동료 예술인들은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고인과 함께 연극 '신의 아그네스'에 출연했던 박정자와 손숙은 손을 맞잡은 채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았다.

5분간의 추도사 이후 최정원과 배해선, 박건형 등 고인이 2003년 제작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에 출연한 후배 배우들이 고인의 애창곡이던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부르며 추모했다. 고인의 남편인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대표도 딸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렇게 좋은 날엔/ 이렇게 좋은 날엔"이라는 노래 후렴구가 구슬프게 노제 현장에 울려 퍼지자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눈시울을 붉힌 채 추모 대열에 참여했다.
앞서 이날 오전 8시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발인 예배에서는 유족과 동료 예술인 등 70여명이 참석해 기도와 찬송으로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은 조사에서 "윤석화 누나는 누구보다도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누구보다도 솔직했고, 멋졌다"며 "3년간의 투병과 아팠던 기억은 다 버리고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뛰어노시길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박 이사장은 고인과 함께 자원봉사단체 다일공동체 홍보대사로 활동한 인연이 있다.
윤석화는 2022년 7월 연극 '햄릿' 이후 그해 10월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고 투병하다 지난 19일 오전 10시께 유족과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50년간 연극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던 대학로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고인의 유해는 장지인 용인공원 아너스톤으로 이동해 영원한 안식에 든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뒤 '신의 아그네스',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에 출연하며 연극계 스타로 발돋움했다. 연극 외에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1994), '명성황후'(1995), 드라마 '우리가 만난 기적'(2018)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쳤다.
'토요일 밤의 열기'를 비롯해 여러 뮤지컬을 직접 연출·제작하기도 했다. 그가 제작에 참여한 '톱 해트'는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1995년 종합엔터테인먼트사 돌꽃컴퍼니를 설립해 만화영화 '홍길동 95'를 제작했고, 1999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공연예술계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서울 대학로에 정미소 극장을 설립하고, '19 그리고 80', '위트' 등 실험적 연극을 제작해 선보이기도 했다.
정부는 연극계 발전에 기여한 고인의 공로를 인정해 문화훈장 추서를 추진 중이다.

hyun@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