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보도로 퓰리처상 수상…오사마 빈라덴도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1991년 걸프전쟁 당시 서방 기자로는 유일하게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생방송으로 전황을 전달한 종군기자 피터 아넷이 별세했다. 향년 91세.
뉴욕타임스(NYT)는 18일 아넷이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뉴포트비치에서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1934년 뉴질랜드에서 출생한 아넷은 고교를 중퇴한 뒤 17세에 언론계에 투신했다.
그는 계약 기자 신분으로 AP통신에서 일했던 1960년 라오스의 쿠데타 소식을 특종 보도하면서 언론계에 이름을 알렸다.
당시 아넷은 기사를 송고할 수 있는 라오스의 전신국이 봉쇄되자 메콩강을 헤엄쳐 태국으로 건너간 뒤 전보로 기사를 송고했다.
그는 생전에 출간한 저서에서 "최대한 빨리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메콩강에 뛰어들었다. 기사와 여권, 10달러짜리 지폐 20장을 꽉 물고 헤엄쳤다"고 회고했다.
이후 AP통신에 정식 고용된 그는 미군과 월남군이 승기를 잡았다는 당국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전황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반복해 보도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과 주베트남 미군 총사령관이었던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공식 발표와 다른 방향으로 보도하는 아넷을 골칫거리로 여겼을 정도였다.
1966년 베트남전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그는 1975년 사이공 함락 당시에도 끝까지 현장을 지키면서 미국 대사관의 혼란과 탈출 장면을 보도했다.
1981년 CNN으로 적을 옮긴 아넷은 걸프전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바그다드의 호텔에서 전화로 다국적군의 폭격 상황을 생생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1997년에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인터뷰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말년에는 언론 윤리와 관련된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CNN은 1997년 미군이 베트남전 당시 라오스에서 신경가스를 사용했다는 오보를 내보냈고, 1년 후 아넷은 그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다.
아넷은 NBC에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2003년 이라크 국영 TV에 출연해 "미국의 초기 전략이 실패했다"고 발언한 사실이 문제가 돼 해고됐다.
이후 아넷은 프리랜서 기자를 거쳐 중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한국계 사위를 둔 그는 지난 2003년 한국에서 강연회를 통해 전쟁 취재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koman@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