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남미공동시장 FTA 연내 체결 불발…프랑스·이탈리아 제동

연합뉴스 2025-12-19 11:00:09

농업국 요구로 결정 '한달 연기'…1만 유럽 농민들 격렬 시위

브라질 "지금 아니면 안 해"…트럼프 무역전쟁 속 유럽 돌파구 찾기 '흔들'

EU 정상회의에서 대화 나누는 정상들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유럽연합(EU)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MERCOSUR) 간 자유무역협정(FTA) 연내 체결이 불발했다.

EU 지도부는 원래 20일 열릴 메르코수르 정상회의를 계기로 FTA 서명식을 추진했지만, 농업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제동으로 EU의 최종 결정이 일단 뒤로 미뤄진 것이다.

남미공동시장 핵심국인 브라질이 FTA 추진 중단까지 경고하고 나서면서 '트럼프 무역전쟁'에 맞서 '메가 FTA'로 돌파구를 마련해보려던 EU의 통상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회원국 정상들에게 EU-메르코수르 FTA 서명이 내년 1월로 연기됐다고 설명했다.

당초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19일까지 이틀간 브뤼셀에서 진행되는 EU 정상회의에서 표결로 FTA 서명 결정을 끌어내고 곧장 20일 메르코수르 정상회의가 열리는 브라질로 가 FTA 체결 서명을 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이 계획은 무산됐다.

농업 개방에 관한 우려가 큰 프랑스가 먼저 '준비 부족'을 이유로 결정 연기를 제안한 가운데 캐스팅 보트를 쥔 된 이탈리아가 동조해 '최소 저지선'이 형성되면서 EU 지도부는 FTA 체결의 결정적 '기회의 창'을 일단 놓친 모양새다.

FTA 서명에는 EU 회원국 75%의 동의가 필요하다. 반대로 인구 35%를 대표하는 4개 회원국 이상의 지지를 확보하면 안건을 부결시킬 수 있게 된다.

프랑스 외에 폴란드와 헝가리가 메르코수르와의 FTA에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탈리아가 사실상 이번 FTA 서명을 무산시킨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르코수르는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 등 남미 4국이 무역 장벽을 전면 철폐해 1995년 출범시킨 공동시장이다.

EU와 이들 남미 4개국은 25년에 걸친 FTA 협상을 거쳐 작년 12월 협상 타결을 선언하고 서명 절차를 앞두고 있다.

그렇지만 EU에서는 국가별, 경제주체별 이해관계가 복잡해 여전히 찬반 논란이 거세다.

서명에 이어 당사국 비준을 거쳐 발효되면 7억명 규모의 거대 공동 시장이 탄생해 유럽산 자동차, 기계, 와인 등의 남미 수출이 늘고 남미산 소고기, 설탕, 쌀, 대두 등의 유럽 유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스페인, 스웨덴 등 찬성 측은 미국의 관세, 중국과의 무역 경쟁 격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역 관계 다변화가 필수라며 조속한 표결을 주장했다.

반면 유럽 농민들은 유럽에 비해 환경 규제가 느슨한 남미의 값싼 농축산물이 시장에 대거 풀리면 유럽산 제품들이 경쟁력을 잃을 것을 우려한다.

EU 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에는 EU 회원국 27개국 전역에서 온 농민 1만명이 격렬한 도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18일 브뤼셀 유럽의회 건물 앞에 등장한 트랙터와 감자 더미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등 농업 부문이 강해 농민 표심이 중요한 나라들은 메르코수르와의 FTA에 반대하거나, 충분한 보호 조치가 갖춰질 때까지는 승인을 위한 표결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외견상으로 EU-메르코수르 FTA 서명 결정이 한 달 뒤로 밀린 것에 불과하지만, EU에서는 이번 표결 연기로 추진 동력이 급속히 약화하면서 FTA가 아예 좌초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EU 측의 지지부진한 논의에 불만을 품은 메르코수르 측도 더는 기다려줄 수 없다고 강한 경고음을 내고 있어 향후 한 달이 EU-메르코수르 FTA 성사의 중대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나는 그들에게 경고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내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는 더는 어떤 무역협정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이터는 EU의 이번 FTA 서명 연기 결정을 두고 "EU의 무역 확대 계획의 미래에 일부 의문을 드리운다"고 지적했다.

ch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