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정상회의서 '러 동결자산 이용' 집중 논의…첫날 결론 못 내
벨기에·이탈리아 등 반대…"유럽 공동 부채 활용 검토중"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18일(현지시간) 개막한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 자금 지원 방식을 놓고 여전히 입장차를 드러냈다.
독일 등이 EU가 동결한 러시아 자산을 활용하는 일명 '배상금 대출' 방식을 주장하는 가운데, 일부 국가는 유럽 공동 채권을 발행해 지원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나서 파열음이 지속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EU는 정상회의 첫날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 합의 도출에 전력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EU는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EU 내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 2천100억 유로(약 363조원)를 담보로 삼아 향후 2년간 우크라이나에 900억 유로(155조원) 규모 대출을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돈줄이 마른 우크라이나가 계속해서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서 유럽의 지원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독일을 필두로 폴란드, 스웨덴, 네덜란드 등은 유럽 납세자들이 부담을 지는 대신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날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위해 유럽의 부채를 쓸지 러시아 자산을 쓸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며 "내 분명한 생각은 러시아 자산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같은 취지로 "오늘 돈을 낼지, 내일 피를 흘릴지 선택해야 한다"며 유럽 지도자들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러시아 동결 자산 대부분을 보관하고 있는 벨기에는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EU 회원국에 묶인 러시아 자산 2천100억유로(약 363조원) 가운데 1천850억유로(약 321조원)는 벨기에 중앙예탁기관 유로클리어에 묶여 있다.
벨기에는 향후 법적 분쟁과 러시아의 보복을 우려해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에 내어주자는 EU의 설득에 응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유로클리어를 상대로 18조1천700억루블(약 335조9천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유럽 은행들을 상대로도 손해배상 청구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태다.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이날 기자들에게 "합의가 어려운 특정 조건이 제거되지 않는 한 동의할 수 없다"며 "벨기에의 입장을 바꾸도록 나를 설득할 만한 문구를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벨기에의 우려에 동조하는 이탈리아, 몰타, 불가리아 등은 EU 예산을 기반으로 한 공동 차입 방식으로 채권을 발행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확실한 법적 근거 없이 러시아 자산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사용하는 것은 러시아에 "전쟁 발발 후 첫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와는 별개로 헝가리는 동결 자산 이용도, 공동 부채 발행에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당장 내년에 쓸 재정이 부족한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 직접 참석해 EU에 조속한 결정을 촉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이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입지가 더 약해진다"이라며 "우리가 무기를 살 돈이 부족해질수록 푸틴이 우리를 장악하려는 유혹은 더 커질 것"이라고 EU를 압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상회의 중간에 더 베버 벨기에 총리와 별도로 만나 설득에 나섰다. 그는 회동 후 "(더 베버 총리가) 말하는 위험을 이해하지만 우리는 더 큰 위험에 직면했다"고 강조했다.

EU는 '밤샘 협상'을 해서라도 우크라이나 지원안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겠다는 방침이다. 회의는 19일 종료될 예정이지만 상황에 따라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
회의를 주재하는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각국 정상들이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의가 난항인 가운데 벨기에 등의 우려를 상쇄할 합의문 초안이 나왔다는 소식도 나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초안에는 러시아가 소송에서 승소하면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대해 벨기에와 다른 국가에 무제한 보증을 제공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약속은 벨기에의 요구에 부합하지만, 일부 국가는 이와 관련한 의회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걸림돌이 여전하다고 외교관들은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EU가 러시아 자산을 이용하는 방안에 합의를 보지 못함에 따라 EU 예산으로 뒷받침되는 EU 공동 부채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EU는 이날 러시아산 원유 밀수에 활용되는 일명 '그림자 선단' 소속 유조선 41척에도 제재를 부과했다. 이로써 제재 대상 선박은 약 600척으로 늘었다.
rice@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