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시설이라면서 지원은 제로…구조적 불평등이 낳은 한국형 스키 위기

[※ 편집자 주 = 기후변화로 국내 스키장 산업이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영업일수 감소와 제도적 불평등, 교육·체육 인프라의 공백 등이 맞물리면서 복합적 위기가 지역경제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기후 위기가 가져온 스키 산업 변화, 규제만 중첩된 현실과 구조적 문제, 지속 가능한 전환 방향을 3편에 걸쳐 짚어봅니다.]
(춘천=연합뉴스) 이상학 기자 = 기후 변화로 영업일수와 방문객이 줄어드는 국내 스키장들은 또 다른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체육시설'로 분류돼 있지만 정작 체육시설로 행정·재정 지원은 거의 받지 못하고, 공공 부지 사용료와 전기요금, 환경 규제 등 각종 부담을 떠안는 모순적 구조 때문이다.
스키장 업계에서는 "기후위기도 버거운데 제도는 더 큰 위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 공공부지 쓰는데 공공성 외면…대부료·전기요금 '이중고' 가중
국내 스키장 상당수는 국·공유림을 임대해 운영한다.
문제는 대부료가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오르면서 특히 중소형 스키장의 경영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원지역 한 스키장 관계자는 "대부료가 5년 전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며 "제설비 전기료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적자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토로했다.
대부료 산정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의 지속적인 상승이 부담을 키우고 있다.
전기요금 체계도 스키장 운영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스키장은 겨울철 2∼3개월 동안 제설기·리프트·조명 등으로 전력을 집중 사용하지만, 산업용 '동계 피크요금제' 탓에 가장 높은 사용량이 1년치 요금 산정 기준이 된다.
폐장 이후에도 최고요율이 적용되는 구조다.
기후 온난화로 제설 가능 시간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 요금체계는 사실상 '패널티'처럼 작용한다.
제설수 취수 허가, 산지 이용 제한, 추가 환경 규제 등도 겹치면서 스키장 운영 부담은 해마다 커지고 있지만, 정부 보조금이나 장비 지원책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조원득 한국스키장경영협회 사무국장은 "스키장을 관광·체육 인프라로 보지 않고 일반 민간 레저시설로만 취급하는 순간 공공성은 빠지고 비용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 '체육시설' 명칭은 있는데 혜택은 없다…글로벌 경쟁력 흔들
스키장은 법적으로 체육시설로 등록돼 있지만, 구기종목 중심의 체육정책 구조 속에서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스키나 스노보드 등 동계스포츠는 민간 레저시설로 분류돼 정책 우선순위 밖에 머문다는 평가가 많다.
반면 중국은 '겨울 스포츠 인구 3억명 육성'을 목표로 국가 차원의 대규모 정책을 추진하며 스키장 인프라 확충·장비 지원·학생 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스위스·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는 스키장을 지역 관광 시설이 아닌 체육교육 기반으로 인식하고 장비·교통·시설 개선을 공공이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제도적 후진성이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성준 경기대 교수(전 스포츠산업경영학회 회장)는 "스키장은 단순한 레저시설이 아니라 체육·교육·지역경제가 얽힌 공공 자산"이라며 "지금의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산업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 '요금은 공공이 정하고 책임은 민간이 지는 구조' 개선 절실
스키장 업계가 꼽는 시급한 개선 과제는 공시지가 기반 대부료 산정 방식 개편, 동계 피크요금제 현실화, 환경 규제의 합리적 조정 등이다.
대부료가 공공성을 근거로 결정된다면 스키장이 지역경제·관광·체육문화에 기여하는 부분도 평가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스키장은 지역 내 고용과 겨울철 관광 수요를 견인하는 핵심 시설이다.
강원지역 한 지자체 관계자는 "스키장 하나가 지역 겨울경제의 30~40%를 좌우한다"며 "스키장이 흔들리면 주변 숙박·식당·렌털샵과 마을 인구까지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 제도에서는 비용 부담만 늘고 공익 기여도는 인정받지 못해 민간 사업자의 희생만 누적되는 구조다.
김창근 용평리조트 팀장은 "스키장은 지역경제 유지와 청소년 스포츠 기반을 지탱하는 공공성 있는 시설"이라며 "기후위기와 비용 상승이 동시에 오는 상황에서는 제도 개선 없이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스키장을 단순한 겨울 레저시설에서 벗어나 사계절형 체육·관광 복합시설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충희 한국스키장경영협회장은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비용 증가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산업 구조의 부조화가 드러난 결과"라며 "스키장을 공공 체육 인프라로 인정하고, 지자체·정부·민간이 공동 책임을 나눌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hak@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