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백신 장관 비판' 美 소아과학회에 정부 지원금 취소

연합뉴스 2025-12-19 00:00:33

"더 이상 기관 우선순위 부합하지 않아" 등 정책상 이유 들어

인종차별·빈곤 따른 격차 지적 등 "정체성 기반 언어"도 문제 삼아

케네디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미국 보건복지부(HHS)가 미국 소아과학회(AAP)에 대한 7건의 지원사업을 취소하고 지원금 지급을 끊었다고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AAP 등 의학계 전문가 단체들이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HHS 장관의 '반(反) 백신' 정책을 비판해온 가운데 나온 것으로, 이를 계기로 의학계와 HHS 사이의 갈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HHS는 지원 취소 명목으로 "더 이상 기관의 우선순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등 정책상의 이유를 댔다.

AAP 최고경영자(CEO) 겸 수석 상근부회장(EVP)인 마크 델 몬티는 WP에 보낸 입장문에서 "이번에 이뤄진 갑작스러운 자금지원 중단은 미국 전 지역의 유아, 아동, 청소년,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직접 영향을 주고 잠재적으로 해를 끼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취소된 지원사업들이 영아돌연사망(SID) 감소, 농촌 지역 의료서비스 접근, 정신건강, 청소년건강, 출생결함 아동 지원, 자폐증 조기진단, 태아 알코올 스펙트럼 장애 등 다양한 아동청소년 건강정책 목표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적 쟁송을 포함해 이번 조치에 반격할 방안들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WP가 인용한 연방정부 지원사업 데이터베이스 자료에 따르면 AAP가 올해 HHS로부터 받은 연방정부 지원금은 도합 1천840만 달러(272억원)였다.

HHS의 AAP 지원에 대해 일부 백신 반대 운동가들이나 케네디 장관 지지자들은 AAP가 취학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의무 예방접종에 찬성하므로 정부 지원금을 끊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취소된 7건의 지원사업 중 3건은 HHS 산하 질병통제예방센터(CDC), 4건은 보건자원행정국(HRSA)을 통해 각각 지원됐다.

WP에 따르면 이번 지원 취소 조치는 외부에 대한 예고 없이 이번 주에 갑자기 이뤄졌다.

정치적으로 임명된 HHS의 정무직 고위 인사인 제임스 밀러는 16일(현지시간) 다른 HHS와 CDC 관계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CDC의 AAP 지원 사업들에 대해 "만약 이미 완료하지 않았다면 오늘 중으로 취소를 완료하라"고 지시했다.

약 1시간 뒤에 역시 정치적으로 임명된 정무직 고위인사인 조던 페이클로스 CDC 부(副)비서실장은 이 이메일에 대해 "10-4. 진행 중"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10-4'는 '이해했음', '접수 완료', '알았음', '오케이' 등의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취소된 사업 중에는 2023∼2025년까지 AAP에 대한 지원금 규모가 1천80만 달러(266억 원)였던 CDC의 신생아와 영아 건강을 위한 사업도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AAP에 보낸 이 사업의 취소 통보서에서 AAP가 사업신청서와 사업계획서에 쓴 표현들을 문제 삼으면서 이런 AAP의 활동은 HHS와 CDC의 우선순위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AAP가 "인종차별과 빈곤에 따른 격차"를 지적하고 "('임신한 여성들'이 아니라) 임신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정체성 기반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그런 판단의 근거로 제시됐다.

그레타 마세티 조지아주립대 인구보건과학과 학과장은 "AAP 같은 단체들은 증거를 기반으로 임상 지침을 만들고, 일선 의료진을 지원하며, 공중보건 권고사항이 실제 세계에서 아동과 가족에게 전달되도록 돕는다"며 "이런 협력관계를 지원하는 지원금을 갑자기 중단해버리면 과학, 실무, 예방을 연결하는 인프라가 약화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마세티 학과장은 지난 8월까지 CDC 산하 국가부상예방통제센터(NCIPC)에서 수석부소장으로 근무했다.

limhwaso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