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무라상'에서 다시 '김씨'로…우리의 이름·기억 되찾기까지

연합뉴스 2025-12-19 00:00:26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945-1948 역사 되찾기, 다시 우리로' 개막

해방 후 사회적 변화·노력 조명…이순신 '팔사품도' 병풍 등 주목

달라진 통지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944년 경성, 즉 지금의 서울 효제공립국민학교 2학년 학생의 통지표. '금촌용옥'(金村用玉)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그 시절 일본어 발음과 연계해 '가네무라'로 창씨개명한 사례다.

그러나 1년 뒤 이름은 원래 모습을 찾았다. 어색한 일본식 성(姓)은 사라졌고 원래 성인 '김'(金)만 남았다. 호적부에 적힌 일본식 성 위에는 붉은색 줄이 쭉 그어졌다.

해방 이후 되찾은 이름, 되찾은 기억이다. 1945년 광복의 그날부터 1948년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 우리의 말과 문화, 기억을 다시 찾는 과정을 조명한 전시가 열린다.

일본식 성을 지운 호적부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18일 개막한 특별전 '1945-1948 역사 되찾기, 다시 우리로'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준비한 전시는 해방 공간에서 펼쳐진 3년을 '되찾음'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약 3년은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되찾고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의 다양한 활동이 이뤄진 시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약 150점의 자료를 모은 전시는 해방 이후 '다시 우리로' 돌아가려는 여정을 짚는다.

조선어학회가 펴낸 최초의 우리말 사전 '조선말큰사전'

광복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우리 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최초의 우리말 사전 '말모이'의 원고, 1947년 한글날에 출간된 '조선말큰사전' 등이 소개된다.

조선어학회가 펴낸 '조선말큰사전'의 경우, 과거 일제의 탄압으로 잃어버렸던 원고를 광복 직후 서울역 창고에서 기적적으로 발견한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광복 후 처음으로 펴낸 국어 교과서, 훈민정음 반포 500돌을 기념해 제작된 해례본 영인본(影印本·원본을 사진이나 기타 방법으로 복제한 인쇄물) 등도 선보인다.

일상의 작은 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주요 전시품

한수 관장은 "해방 이후에는 닭의 울음소리도 달라진다"며 "기존에는 일본어로 '고게고꼬'라고 표현했지만, 마음 놓고 '꼬끼오'라고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약 80년 전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도 비중 있게 다룬다.

대표적인 게 교과서의 변화. 조선총독부가 1942년에 발행한 초등 교육용 지리 교과서는 한반도의 산맥이 일본의 산맥 체계 안에 포함된 것처럼 표현돼 있다.

동해 역시 '일본해'(日本海)라고 표기돼 있다.

상해판 '독립신문' 개천절 특집호

그러나 1946년에 진단학회가 펴낸 국사 교과서는 민족사와 문화 전통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단군 신화,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의 승전 기록을 강조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새로 편찬한 교과서는 우리 역사와 영토에 대한 인식을 명확하게 했다"며 "식민 지배로 단절된 과거를 잇고 역사의 연속성을 회복하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고종(재위 1863∼1907)이 황제로 즉위하고 문서에 사용하려고 1897년에 만든 국새 10점 중 하나인 보물 '국새 칙명지보'(國璽 勅命之寶)도 만날 수 있다.

1910년 강제 병합 후 일제에 의해 약탈당한 이 국새는 광복 1주년을 맞은 1946년 8월 15일 미군정을 통해 고국 품으로 돌아온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의미가 크다.

국새 칙명지보

그 시절 이순신 장군을 둘러싼 움직임도 주목할 부분이다.

1946년 4월 서울 덕수궁 미술관은 충무공 탄신 401주년을 맞아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유물을 일제히 공개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서슬 퍼런 압박에 내놓을 수 없었던 유물이다.

전시에서는 충무공의 공로를 기리며 명나라에서 선물한 8개 물품을 표현한 그림인 '팔사품도' 병풍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다.

박물관 측은 "1946년 전시 이후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AI로 만든 영상

전남 해남 주민들이 명량대첩비를 되찾은 과정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명량대첩비는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돼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방치됐다가 다시 돌아온 역사를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영상, 탁본 등으로 보여준다.

'팔사품도' 병풍

박물관 관계자는 "격동의 해방 공간 속에서 '다시 우리로' 돌아가려는 염원과 새로운 나라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던 그때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31일까지 볼 수 있다.

한편, 박물관에서는 우리 현대사의 밤 풍경을 조명한 전시도 열리고 있다.

3층 주제관에서 선보인 전시는 조선시대 야금(夜禁·인경을 친 뒤에 통행을 금지하던 일), 광복 이후 미군정에 의해 시작된 야간통행 금지 제도화 해제 과정을 보여준다.

전시 포스터

y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