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위 배당으로 전담 지정" vs "대법원장이 인사권 행사해 판사 지명"
대법 "국민·국회 우려 해소"…與법안 강행하면 대법예규 사실상 사문화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대법원이 18일 스스로 내란·외환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예규를 내놓은 것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운영에 따른 위헌 소지를 차단하고 자진해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민주당에선 대법원 예규와 별개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라 대법원이 내놓은 전담재판부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이날 대법관들이 개최한 행정회의에서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법부 중요 예규의 경우 대법관 회의에서 결정한다.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 중 국민적 관심이 큰 중요 사건을 집중적으로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하는 내용이다. 행정예고 기간을 거쳐 예규 시행 시점 이후 기소되거나 항소 제기된 사건에 적용되므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재판 항소심이 첫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의 전담재판부 설치 예규는 민주당이 이달 본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안 처리를 예고하는 등 입법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나왔다.
민주당은 지난 3월 지귀연 재판부의 윤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과 5월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파기환송 판결 이후 사법 불신 여론을 강조하며 '사법개혁' 추진에 고삐를 죄어왔다.
여기에 내란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여러 차례 기각되자 내란전담(특별)재판부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층 힘을 얻었다. 이를 두고 사건 배당에 외부 인사가 관여한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이 제기되자 수정안을 내놓았다.

이날 대법원이 내놓은 예규안과 민주당 법안의 가장 큰 차이는 재판부 구성에 있다.
민주당 안에 따르면 대법원장이 대법관 회의를 거쳐 내란전담재판부 판사를 '임명'하게 된다. 전담재판부 판사는 당초 헌법재판소 사무처장·법무부 장관·판사회의에서 3명씩 추천한 9명이 추천위를 구성한다는 구상이었으나 위헌적이란 지적에 내부인으로 추천위를 구성하는 쪽으로 수정했다.
반면에 대법원이 내놓은 전담재판부의 경우 '무작위 배당'이 원칙이다. 기존과 같이 무작위 배당을 하되, 배당받은 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지정해 해당 재판부의 기존 사건을 재배당하고 새로운 사건은 배당하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 안은 특정 사건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재판부를 설치하는 것인 반면, 대법원 안은 기존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유지하되 해당 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지정한다는 것이 차이다.
행정처 관계자는 "국가적 중요 사건 재판의 신속, 공정한 진행에 대한 국민과 국회의 우려에 대해 이를 해소하기 위한 취지의 예규"라고 강조했다. 이 예규를 통해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같은 절차 지연 없이 사건배당의 무작위성과 임의성 원칙도 유지하면서 신속한 재판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사법부 스스로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국민 신뢰를 받는 재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민주당의 법안 통과를 앞둔 이 시점에 예규를 제정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행정처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 나온 여러 우려와 요청에 따라 예규가 만들어지게 됐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지난 9월 열린 임시 전국법원장회의에선 법원장들이 내란재판부 법안에 대해 우려를 표하면서도 사법부에 신속한 재판지원 방안을 검토하라는 주문이 나왔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에서도 특검 사건 항소심을 대비하고자 집중심리재판부 설치 방안을 발표했다.
이달 5일과 8일 각각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당시 내란전담재판부 법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이달 9∼11일 각계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에서 많은 패널이 위헌 소지가 있는 법안이 만들어지기 전에 사법부 스스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내란 사건이 단 1개도 선고되지 않은 건 문제가 있다"며 "지금이라도 내란 재판은 신속하게 선고하고 법원이 기타 신뢰성 있는 조치로 분위기를 차분하게 할 필요가 있다. 법원이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고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 제정의 계기를 없애는 게 왕도"라고 지적했다.
다만 민주당이 입법을 강행하면 예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우려도 있다. 법 체계상 법률과 시행령에 규칙이 이어지므로, 예규와 법령 내용이 배치되면 법률의 효력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날 민주당 관계자는 이날 대법원 예규안 공개 이후 "당은 법안을 본회의에서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며 "입법에 맞춰 대법원 예규를 마련하면 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이 추진 중인 법안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만약 민주당 예고대로 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면 대법원 예규는 통과된 법안 취지에 맞게 수정되는 등의 후속 절차기 따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already@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