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도서비평가상 수상작가 세라 베이크웰 신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362년 한 수도사가 '데카메론'을 쓴 작가 보카치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비기독교적 서적을 없애고 그런 서적을 집필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즉시 죽게 된다고.
보카치오는 패닉에 빠졌다. 일반인이 그렇게 말해도 찜찜한데, 하물며 기독교가 지배하는 시대에, 그것도 뛰어난 수도사가 한 저주였기 때문이었다. 보카치오는 선생처럼 여기는 당대의 계관시인 페트라르카에게 조언을 구했다.
책에 미쳐 수일 동안 이어지는 필사도 마다하지 않았던 '고전주의자' 페트라르카는 보카치오가 보유한 장서가 탐났다. 그러나 이기적 목적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그의 마음에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인문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페트라르카는 보카치오에게 답했다.
"문학을 사랑하고 잘한다면 그것을 내팽개치는 일이 어찌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 수 있겠는가?"
독실한 신앙인이자 수도사이기도 했던 페트라르카는 무지(無知)가 선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식과 배움의 편'에 섰다. 편지를 받은 보카치오는 장서도 보유하고 책을 계속 써 나갔다.

전미도서비평가상 수상 작가인 세라 베리크웰이 쓴 신간 '우리를 인가답게 만드는 것들'(다산초당)은 휴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를 시작으로 몽테뉴, 데이비드 흄, 버트런드 러셀, 닐 허스트 등의 행적을 추적하며 700년간 이어져 온 인문주의의 도도한 흐름을 살핀다.
역사 속에서 인간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페스트와 같은 치명적인 재난을 마주했다. 그런 실수와 고난 속에서도 휴머니스트들은 당대의 삶을 치열하게 관찰했고, 선인들의 지혜를 당대에 끌어오려고 노력했으며, 평생을 터득한 지혜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려고 심신을 갈고 닦았다.
근대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말처럼 그들은 "덧셈만 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 나갔다. "휴머니즘은 결코 인간의 풍요로운 삶에서 그 어떤 것도 빼앗아 가서는 안 된다. 다만 더 많은 풍요를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자세를 가지고서.

그러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종교적 탄압, 전쟁, 인종차별, 불평등 등 위험과 제약으로 꽉 찼다. 그럼에도 휴머니스트인 그들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도 인간의 가능성을 믿었다.
"개인적으로는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상냥한 것을 돌볼 수 있기를, 풍파가 심할 때는 순간의 통찰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사회적으로는 개인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고, 혐오와 탐욕과 질시가 굶주려 죽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믿는 것은 이런 것들이고 세상은 그 모든 참혹에도 나를 흔들어놓지 못했다."(책에 인용된 버트런드 러셀 '자서전' 중)
그들의 이런 분투와 감정들이 책에 담겼다. 책을 읽다 보면 휴머니스트의 수사법, 주로 윤리와 정의에 바탕을 둔, 그런 말들에 오랫동안 눈길이 머무를 수도 있다. 이런 말들이 끌어당기는 힘(引力)이 때론 너무 강력하니까.
이다희 옮김. 6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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