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수업, 지하벙커 학교…우크라 잃어버린 세대

연합뉴스 2025-12-18 00:00:39

코로나 이어 6년째 컴퓨터 앞 생활 '끝나지 않는 봉쇄'

전쟁 충격에 청소년 정신건강 적신호

포격에 부서진 학교 앞을 지나는 하르키우주 15세 청소년 보흐단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코로나19 사태에 이어 러시아 침공으로 4년 가까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청소년들이 끝나지 않는 '봉쇄'에 갇혀 고통받고 있다고 AFP 통신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청소년 약 100만명이 전면 또는 부분 온라인 수업을 받는다. 이들은 팬데믹에 이어 전쟁까지 거의 6년간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공부하거나 쉬는 데 대부분을 보냈다.

공습 경보가 끊임 없이 울리는 동부 지역에서 특히 그렇다. 우크라이나 정부 기록에 따르면 하르키우주에서만 파괴되거나 파손된 교육시설은 843곳이다.

AFP는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벨링캣과 함께 하르키우주에서 러시아 공습을 받거나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교육기관과 청소년 센터, 청소년들의 실상을 기록했다.

보흐단 레우치코우(15)는 100% 온라인 수업을 듣고, 동네에는 아는 또래가 한 명도 없다. 그의 고향 발라클리아는 2022년 3∼9월 러시아군에 점령당했다가 수복된 전방 마을이다. 청소년들이 어울려 놀던 스케이트 공원과 강둑은 러시아군에 의해 지뢰밭이 됐다.

직업 군인이던 아버지는 개전 직후 전사했고 어머니는 최근 3기 암 진단을 받았다. 보흐단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울리는 공습경보에 아파트 지하로 피신한다.

보흐단의 어머니 이리나는 "모든 아이들이 이런 생활에 빨리 적응했다"며 "이 세대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최근에는 지하 벙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하르키우시 당국은 연내 지하 학교 10곳을 개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예벤헬리나 투투리코(14)는 올해 9월부터 지하 수m 깊이에 자연광은 없는 학교에 다니는데 "학급 친구들과 직접 말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절반만 학교에서 지내고 나머지는 온라인 수업을 들어야 한다. 더 많은 아이를 학교에 수용하기 위해서다.

하르키우주에서는 러시아 공습 우려로 학교 야외 스포츠 활동은 전면 금지다. 그러나 학교 밖에서 성장기 아이들에게 신체 활동을 할 기회를 주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사설 축구 코치인 올렉산드르 안드루시첸코는 "공식 경기는 금지됐지만, 우리끼리 해나가고 있다"며 "(우리 학부모들은) 코로나19 시기 이후로 아이들이 신체 발달을 못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또 아이들이 휴대전화만 붙들고 있는 것보다 축구를 하는 게 낫지 않나"라고 말했다.

컴퓨터 앞에 앉은 15세 청소년 보흐단

전쟁 스트레스에 따른 정신 건강도 큰 문제지만 전쟁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자원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마리우폴 출신 아동 심리학자 마리나 두드니크는 하르키우 전방 마을 상담실에 비상용 방탄조끼를 준비해둔 채로 어린이들에게 감정 표출하기를 도와주는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두드니크는 "아이들은 공포와 불안에 휩싸여 있고 10대들은 자해와 자살 충동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연구진이 2023년 말 우크라이나 11∼17세 2만4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심리적 안정이 악화하고 행복감이 현저하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