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게르스타인 "음악 향한 사랑이 원동력"

연합뉴스 2025-12-17 17:00:10

23일 첫 내한 리사이틀…"낭만주의 리스트와 브람스, 통합된 경험하길"

클래식과 재즈 모두 공부…"음악, 검은 음표 이상의 것"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키릴 게르스타인(46)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는 클래식 음악 전문사이트 바흐트랙이 2023년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바쁜 피아니스트 1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4위를 차지해 조성진(5위)과 나란히 상위권에 자리했다.

게르스타인이 지난 5월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데 이어 다시 국내 관객과 만난다. 그는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첫 내한 리사이틀을 개최한다.

"일정이 강도 높아 보인다면, 그것은 단순히 공연 횟수를 늘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제 음악적 호기심과 관심을 따라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게르스타인이 17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호기심, 관심, 그리고 음악에 대한 사랑"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피아노가 자신의 중심을 잡아준다고 강조했다.

"상황은 늘 바뀌지만, 피아노만큼은 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오히려 그 피아노가 저 자신을 다시 중심에 놓이게 해주는 기준점 같은 역할을 합니다."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

게르스타인은 이번에 낭만주의 대표 작곡가 리스트와 브람스의 작품을 선보인다. 리스트의 '세 개의 페트라르카의 소네트'와 '순례의 해: 두 번째 해, 이탈리아' 중 '단테를 읽고: 소나타풍의 환상곡', 브람스의 스케르초와 피아노 소나타 3번이다.

그는 표제음악(이야기·풍경 등 음악 외적인 대상을 묘사하는 음악)의 리스트와 절대음악(선율 등 음악 요소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음악)의 브람스를 나란히 배치했다며 이를 총체적으로 경험할 것을 권했다.

"낭만주의적 상상력의 두 가지 유형을 나란히 배치했습니다. 이는 19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중요한 논쟁이었고, 리스트·바그너 진영과 브람스의 대립으로 자주 표현되곤 했죠. 다만 저는 관객분들이 이것을 단순한 대비가 아니라 하나의 통합된 경험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게르스타인은 한국 관객에게 받은 강렬한 인상을 밝히며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놀라울 만큼 높은 집중력과 진지함, 그리고 장르에 대한 열정을 느낍니다. 그 점이 저를 설레게 하죠. 깊이 감동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

게르스타인은 1979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과 재즈를 병행했고 14세에 버클리 음악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두 장르를 모두 공부했다.

그는 재즈를 공부한 경험이 자신의 클래식 음악 연주에 스미길 원한다고 했다.

"재즈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음악이 단순히 종이에 찍힌 검은 음표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줬습니다. 타이밍, 어조, 프레이즈(악구)의 감각은 단순히 '정확한 음'을 연주하는 것으로 환원될 수 없거든요. 즉흥 연주는 또 음악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

게르스타인은 지난해 제1차 세계대전을 겪은 클로드 드뷔시와 아르메니아 작곡가 코미타스 바르다페트의 음악을 같이 담은 음반으로 주목받았다. 드뷔시는 독일이 프랑스를 공격하는 와중에 암으로 사망했고, 바르다페트는 아르메니아 학살을 목격했다.

그는 "드뷔시 후기 작품과 코미타스의 유산을 둘러싸고 1차 세계대전과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의 역사적·윤리적 맥락을 이해하고 조명하고자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며 "재앙 속에서 탄생한 예술이 반드시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키릴 게르스타인 피아노 리사이틀

encounter2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