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작부터 말년작까지 100여점 출품…'그린다는 건 말야'
정현두·양미란·강동호 젊은 작가 3인의 회화 소개…'성곡미술관 2025 오픈콜'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그림의 기본이자 본질로 돌아가 정통 회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전시 두 편이 서울 종로구 성곡미술관에서 16일 시작했다.
성곡미술관 1전시관에서 선보인 '그린다는 건 말야 : 장-마리 해슬리'전은 프랑스 출신으로 지난해 세상을 떠난 작가 장-마리 해슬리(1939∼2024)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회고전이다.
해슬리는 프랑스 알자스 지역의 광산촌에서 태어나 14세부터 갱도에서 일했다. 그러다 병을 얻어 병상에 눕게 됐고, 그곳에서 반 고흐의 전기를 읽으며 미술의 세계에 매료됐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반 고흐를 비롯한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해슬리는 채굴 장비 설계 기술을 배우며 전환점을 맞았다. 이 기술을 밑천 삼아 파리로 떠나 여러 작가와 교류했고, 이후 미국 뉴욕에서도 일하며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 등 걸작을 따라 그린 초기 작품과 파리·뉴욕 시기의 작업, 말년 병상에서 제작한 소품들을 선보인다.
1980년 작 '망각의 문'은 아치형 창을 연상시키는 캔버스에 강렬한 원색의 선들로 화면 전체를 빽빽하게 채운 작품이다. 화면 속 형상들은 완전히 지워지지도, 선명하게 드러나지도 않은 채 불안정한 상태로 머문다. 제목이 암시하듯 하나의 통로이자 경계로 읽힌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인범 전 상명대 교수(더스페이스 138 대표)는 "해슬리는 뉴욕에서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설치미술 등 동시대 흐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다가 1980년대부터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2부에서는 해슬리의 '우주' 연작과 추상적 풍경화를 만날 수 있다. 우주 연작은 뉴욕 미술계의 주류 흐름에서 한발 물러나 자신만의 표현주의적 언어를 구축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염소자리Ⅰ'은 별자리가 지닌 에너지가 응축돼 발산되는 순간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굵고 거친 붓놀림으로 화면에 소용돌이치는 운동감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장하는 나선형 회오리를 떠올리게 한다.

우주와 자연을 탐구하던 해슬리는 이후 시선을 인간으로 돌린다. 자기 표현주의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자기도취적일 수 있다는 자각에서다. 그는 르네상스 시기 유럽에서 유행한 인체 알파벳 그림에서 착안해, 인간의 신체를 알파벳 형태의 기호로 표현한 '인체 알파벳' 연작을 선보인다.
더 나아가 인체를 파편적으로 해체하고 기하학적 그리드로 재구성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간다.
1999년 작 '파편들'은 인간의 신체를 퍼즐처럼 화면에 배치한 작품으로, 시간이 흐르며 흩어지고 조각난 기억과 과거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미술관 2전시관에서는 한국의 젊은 회화 작가들을 소개하는 '성곡미술관 2025 오픈콜'이 열리고 있다. 정현두(38), 양미란(41), 강동호(31) 등 3명이 참여했다.
정현두는 자신의 감각과 시간, 몸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추상화로 풀어낸다. 이전에는 여러 추상화를 다시 조합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에 바퀴와 손잡이를 달아 관객이 직접 이동시키며 조합할 수 있도록 했다.

양미란은 '쾌활한 빛, 사색하는 빛'이라는 전시 제목처럼 빛의 무수한 변화를 탐구한다. 2025년 작 '쾌활한 빛'은 지평선 위에 다양한 색의 섬광 같은 빛을 표현한 작품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이전에는 달을 직접적으로 그렸다면, 최근에는 회화의 물질성에 집중하며 빛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동호는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물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포착해 회화로 옮겼다.
두 전시 모두 내달 18일까지 열린다.

laecorp@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