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민법 67년만에 싹 바뀐다…계약법 개정안 국무회의 통과

연합뉴스 2025-12-16 16:00:02

법정형 변동이율제·가스라이팅 개념·'사정변경' 계약 수정·'원상회복' 손해배상 도입

세번째 시도 만에 제정 이후 첫 전면 개정…국민생활·경제 밀접한 계약 분야 우선 개정

대화하는 정성호 장관과 윤창렬 실장

(서울=연합뉴스) 이밝음 기자 = 1958년 제정된 민법의 전면 개정 절차가 67년 만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민법은 국민 생활과 경제활동의 기본법으로 가장 중요한 법이지만 제정 이후 큰 변화 없이 유지돼 크게 변모한 현 사회·경제 상황과 시대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낡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친족법과 상속법 영역은 여러 차례에 걸쳐 상당한 범위에서 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주로 재산 관계를 규율하는 분야(총칙·물권·채권)와 관련해선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앞서 두 차례 전면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최종 개정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에 법무부는 2023년 위원회를 발족해 전면적인 개정 작업의 첫발을 디딘 바 있다. 이번 개정안은 그 구체적인 첫 성과물이라는 의미가 있다.

법무부는 16일 민법 중에서 계약법 규정에 대한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에는 법정형 변동이율제와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개념 등이 담겼다.

기존 법정이율은 민사 연 5%, 상사 연 6%로 고정돼있다. 개정안은 금리와 물가 등 경제 사정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법정이율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가스라이팅 개념을 도입해 부당한 간섭이 있었을 경우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도 마련했다. 최근 종교 지도자와 신도, 간병인과 환자 등의 관계에서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인 사람이 상대방에게 강하게 의존한 상태에서 그 영향으로 의사표시를 한 사례가 사회 문제가 되는 일이 적지 않게 발생해왔다. 그러나 이 경우 기존의 착오·사기·강박에 의한 취소 규정으로는 의사표시자를 보호하기 어렵다는 법의 공백이 지적됐다.

이번 개정안은 미국·영국 등 다수 국가에서 채택한 '부당위압' 법리를 도입해 부당한 간섭에 의한 의사표시 취소를 인정했다.

또 사정 변경에 따른 계약의 해제·해지를 인정해 온 판례 법리를 법에 명문화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반영해 계약수정청구권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계약 수정이 불가능하거나 당사자에게 계약 수정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 계약을 해제·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관련 규정도 정비했다. 손해배상의 방법으로 금전배상 외에 원상회복에 의한 배상을 일반적으로 인정키로 했다. 금전채무 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 규정 및 위약금에 관한 규정도 손질했다.

기존 담보책임 규정은 복잡하고 불명확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매매 하자의 유형을 '권리의 하자'와 '물건의 하자' 2가지로 통합해 단순화·합리화하고 종래 일부 하자 유형에만 인정되는 추완이행 청구권과 대금감액 청구권을 모든 하자 유형에 인정해 구제수단을 확충했다.

이에 따라 국민이 편리하게 권리를 행사하고 법률 분쟁을 합리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선했다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1958년 민법이 제정된 후 성년후견 제도를 도입하는 등 일부 변화가 있었지만, 전면 개정이 이뤄진 적은 없다.

법무부는 2023년 6월 양창수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를 출범하고 전면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첫 번째 과제로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계약법 규정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개정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개정안 첫 순서가 국민 생활과 밀접한 계약법 규정 개정이다.

이는 민법전의 편별 구분에 따른 총칙, 물권편, 채권편 등의 형식적 구분을 벗어나 기능적 관련성을 기준으로 각 분야별로 개정안을 마련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계약과 관련된 민법 규정 전반이 첫 대상이 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개정안이 국민 편익과 민법의 신뢰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며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도 민법의 현대화를 위한 개정 작업을 지속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brigh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