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이 몬 막다른 길…20㎝ 좁은 창틀이 마지막이었다

연합뉴스 2025-12-16 15:00:12

거듭된 폭행 견디다 못해 몸 숨겨…창문 열자 4층 아래로 추락

생전 폭력 멈춰달라고 호소…1·2심 재판부 모두 징역 4년 선고

비 오는 창문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나는 제발 때리지 말라고, 살려달라고 너한테 빌었어", "띵띵 부은 내 얼굴 볼 때마다 자꾸 그 장면이 떠올라 지옥 같아."

남자친구의 교제 폭력을 피하려 발을 온전히 디딜 틈조차 없는 좁은 창틀에 숨었다가 추락해 숨진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재판을 통해 알려졌다.

당초 이 일은 피해자가 빌라 4층에서 스스로 떨어진 것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실상은 반복된 교제 폭력이 부른 끔찍한 비극이었다.

16일 전주지법 3-3형사 항소부(정세진 부장판사)는 폭행치사·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A(33)씨의 항소심에서 검사와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이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A씨는 피해자인 B(33·여)씨와 2021년 10월부터 교제를 시작해 전주시 덕진구의 한 빌라에서 함께 살았다.

그러나 A씨는 이듬해 2월부터 술을 마실 때마다 B씨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집에 가고 싶다"며 우는 여자친구를 때려 뼈를 부러뜨리기도 했다.

당시 B씨의 진단서에는 '치료 기간 불명의 늑골 폐쇄성 골절', '늑골 염좌 및 긴장', '안면부와 다리 타박상' 등 교제 폭력의 흔적이 생생히 기록됐다.

A씨는 술에서 깨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사과했고, B씨는 그런 남자친구를 몇번이고 받아줬다.

그 말을 믿는 게 아니었다.

사과와 폭행이 쳇바퀴처럼 반복되던 2023년 1월 6일 오후 10시께 겨울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A씨의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B씨는 황급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몸을 피했지만, A씨는 주방에서 가져온 포크와 젓가락으로 잠긴 문을 열려 했다.

덜커덕거리는 문소리에 B씨는 방 창문을 열고 빗물이 들이치는데도 발 크기보다 작은 폭 20㎝ 창틀에 겨우 앉아 다시 몸을 숨겼다.

이때 문을 따고 들어온 A씨는 숨은 여자친구를 찾으려고 침대와 책상 밑까지 샅샅이 살폈다.

A씨는 끝내 여자친구가 창틀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창문을 열어젖혔고, 발도 딛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곳에 겨우 앉아있던 B씨는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다.

B씨는 교제 도중 A씨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폭행을 멈춰달라고 부탁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거기에는 '네가 이렇게 또 날 죽이려 들지 몰랐어', '이번에는 진짜 도망친 거야 내가 죽을까 봐', '어제 무서워서 문 닫고 있었어', '발버둥 치고 도망치면 잡아끌어서 바닥이며 벽에…' 등 생전 B씨가 느꼈던 교제 폭력의 공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A씨는 1심과 2심에서 피해자를 위한다며 형사 공탁했지만, B씨의 가족은 이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법원은 A씨에게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범행 일부를 반성하는 점 등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jay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