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세장벽 해소에 소극적이라며 경고 신호
'체결된 협정도 안심 못한다' 국제사회 우려 커지나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미국이 무역합의 이행을 서두르지 않는다며 최대 우방인 영국을 향해 경고 신호를 보냈다.
1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영국에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터, 원자력 협력을 골자로 한 '기술 번영 합의'(TPD) 이행 중단을 통보했다.
TPD는 지난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 당시 체결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 등 미국 IT 기업들이 영국에 총 310억 파운드(약 59조 원)를 투자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TPD에 대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영미관계의 세대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영국 내에서 기대가 높은 TPD에 대해 미국이 이행 일시 중단을 선언한 것은 협정서에 명시된 조항 때문이다.
협정서에는 TPD는 미국과 영국이 지난 5월 체결한 무역합의의 실질적 이행과 병행돼야 효력을 갖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영국이 무역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미국도 TPD 이행을 일시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 국면에서 체결된 미국과 영국의 무역합의는 관세, 비관세 장벽, 디지털 교역, 경제안보 협력 강화, 상업적 고려와 기회, 기타 현안 등 6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다만 미국은 영국이 비관세 장벽 해소에 소극적이라는 입장이다.
영국은 매년 1만3천t의 미국산 소고기를 무관세로 수입하기로 했지만, 미국이 요구한 식품·농산물 기준 상호 인정 문제에 대해선 구체적인 약속을 하지 않았다.
또한 영국은 농업과 식품 안전 기준을 완화하지 않겠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IT 기업들을 겨냥한 디지털서비스세도 쟁점으로 꼽힌다.
영국은 아마존과 구글, 애플 등 미국 IT 기업의 매출에 2%의 디지털 서비스세를 부과해 연간 8억 파운드(약 1조5천억 원)의 세수를 확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디지털서비스세를 부과하는 국가들에 대해 보복 가능성을 경고해왔지만, 영국에선 디지털서비스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영국 정부는 미국의 TPD 이행 중단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이번 조치를 "미국식 강경 협상 전술"이라면서 양국 협상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압박 조치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최근 양국이 영국산 의약품을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하도록 합의하는 과정에서도 최종 타결까지 여러 차례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피터 카일 영국 과학혁신기술 장관은 최근 워싱턴을 방문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과 만나 협상 재개 방안을 논의했다.
양국은 내년 1월 추가 협상을 이어 나가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미국의 TPD 이행 중단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체결된 무역협상도 안심할 수 없다'는 사례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koman@yn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