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맹폭에 유럽 분열…"우크라 걱정에 반격 못해"

연합뉴스 2025-12-16 00:00:24

"젤렌스키·나토총장, EU에 비판말라 요청…일부 회원국 EU 패싱도 고려"

올해 8월 백악관에서 만난 미·유럽·우크라 정상들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유럽을 맹공하고 있으나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 걱정 등으로 통일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달 초 발표한 새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유럽이 문명의 소멸 위기에 있다고 지적하며 디지털 규제, 지속가능성 법률, 이민 정책 등 유럽 시스템 곳곳을 향해 공세를 펼쳤다.

이는 유럽에 큰 충격이었지만 EU 집행위원회 내부와 유럽 각국은 대응방안을 놓고 견해가 갈렸다.

익명의 당국자들에 따르면 일부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손을 뗄까 우려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에게 보복성 대응을 하지 말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다른 일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맹폭에 침묵한다며 반발했다고 한다.

EU 차원의 대응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정상은 집행위를 거치지 않고 트럼프 정부에 직접 대응하는 방식을 고려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EU가 미국에 공동 대응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인다는 원칙을 뒤흔드는 것이다.

실제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 11일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처럼 EU와 좀처럼 소통하지 못한다면 독일을 포함한 개별 회원국이라도 미국과 협력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다른 국가에서도 집행위를 우회해 트럼프 측과 유럽 문제를 양자 간에 논의할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 EU 지도자급 인사가 전했다.

유럽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우크라이나 문제가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지난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소식통 2명이 전했다.

한 소식통은 "젤렌스키에게 '이제까진 당신을 지지했지만, 이제는 지속가능성 규정과 소셜미디어 과징금 문제에 더 집중해야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한 EU 주요 인사는 "지난여름 우리는 미국과 무역, 나토 방위비,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등 3가지 협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속이고 있었을 뿐 협상은 단 한 가지 '미국을 유럽에 붙잡아두기'였다"고 말했다.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을 둘러싼 EU 내 논쟁도 결국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접근방식의 차이가 원인으로 해석된다. 동결 자산을 우크라이나 대출로 활용하는 안에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등 친트럼프 성향 정부는 반대하고 이탈리아와 불가리아, 몰타도 EU에 대안을 찾으라고 요구한다.

나탈리 토치 로마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은 러시아 동결 자산 문제에 대한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유보하는 태도는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까 우려해서라고 지적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을 향해 공세를 펼치고 우크라이나 협상을 압박하면서 EU 집행위원회의 테크업계 규제도 복잡해졌다.

집행위는 미국 빅테크에 공정한 규제를 적용하고 개방적 시장을 지향한다는 입장이지만 지난 1년간 규제 집행에는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규제 위반 조사나 과징금은 부과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안의 조사를 종결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사지 않으려 신중하게 균형을 맞춰왔다.

유럽의회나 다른 단체들은 타협 없이 EU의 자체 규정을 지키라고 압박하고 있기에 집행위로선 이같은 균형 맞추기가 어려운 일이었다고 당국자들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 매체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도 유럽을 비판하면서 "그들은 약하다"며 "유럽은 뭘 어째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