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애정하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요?

연합뉴스 2025-12-15 00:00:20

# 내가 애정하는 음악, 영국 왕실이 애정하는 브랜드, 술을 애정하는 작가, 산을 애정하는 이유, 우리가 애정하는 프로야구팀.

'애정하다' 쓰임이 심상찮다. 세를 넓혀가는 눈치다.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고 해도 될 자리에 애정한다는 말을 놓는다. 왜일까. 같은 감정이라도 색다르게 전하겠다는 의도? 좋아하다, 사랑하다와는 다르기에 그 차이를 보이려는 마음? 다들 쓰니까 나도 한번 써보자는 심리? [명사+하다] 조어는 물론 허다하다. 일하다 말하다 공부하다는 동사이고 건강하다 행복하다 정직하다는 형용사다. 이 틀로 보면 애정+하다(동사)도 가능한 조어 형태이기는 하다. 관건은 쓸모다. 그 말이 따로 있어야 할 필요 말이다. 그 점에서 애정하다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독립 표제어가 되기 어렵다. 아직 그럴 만큼 쓰임새가 시원치는 않다.

애정(愛情.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사전의 정의

부적절한 [명사+하다]의 대표 사례로 '자유하다'가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신약성서 요한복음 제8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자유케는 자유하게의 줄임말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이게 무슨 말인가. 뜻이야 어렴풋 짐작하지만 자유하다 활용에 어색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애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했다면 말뜻이 희미하지 않고 번쩍했을 것이다. 딱 들어맞는 대안이 버젓이 있는데도 '자유케'로 쓴 이유를 알 길은 없다. 문학적 표현 유혹 때문이었다면 차라리 이해하지만 있어 보이려는 셈법에서였다면 납득하기 어렵다. 제대로 소통하기라는 본령에서 너무 멀어진 번역이니까. 언제부턴가 '자유롭게'를 쓴 성서가 많이 출간된다고 하는 한 국어책(아래 ※ 참고)의 전언이 반갑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문법편)』, 한국교육방송공사(EBS), 2023, pp. 161-162.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은 없다'

2. 표준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