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임영희가 쓰고 그린 에세이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도너츠를 처음 먹어봤어. 엄청 맛있어서 혓바닥이 튀어나올 정도였어."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임영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완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7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린 끝에 광주에 도착했다. 그의 행선지는 양림동에 있는 미션스쿨인 수피아여중. 그녀가 입학한 중학교였다.
시골 소녀의 꿈은 부풀어 올랐지만, 도시의 학교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친구들은 시골서 왔다며 그를 대놓고 무시했고,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엄격했다. 때론 억울하게 혼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고향 생각이 절로 났다. 진도의 미역과 김이 생각났고, 집에 두고 온 강아지 백구가 보고 싶었다. 그런 그를 위로해 준 건 '도넛'이었다. 설탕 가루가 눈처럼 흩뿌려진 양림동의 명물 도넛.
그렇게 도넛을 먹어가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러다 보니 좋은 날이 찾아왔다. 고교 때는 글을 잘 써 교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했고 문학상도 받았다.
여고 졸업 후에는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을 추구한 혁명적 가톨릭 신학인 해방신학에 몰두했다. 자연스럽게 운동권 선배들과도 두루두루 친해졌다. 그와 그의 동료는 군사정권 입장에서 불온 세력이었다. 그는 간첩 혐의로 경찰에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기도 했다. 여러 고난을 겪었지만, 그는 젊었고, 그래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현대문화연구소에서 소설가 황석영 등과 함께 문화 활동을 하며 독재정권 이후의 세상을 꿈꿨다.
마침내 고대하던 유신이 끝났다. 좋은 시절이 올 거라 기대했건만 '서울의 봄'은 짧디짧았다. 12·12 사태를 거치며 집권한 전두환은 그에 반발하던 광주를 타깃으로 삼았다. 무장한 공수부대가 어느 날 광주 충장로에 나타났고, 시민들을 마구 폭행했다. 그러더니 기어이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다.
"'애국가'를 트는 것과 동시에 광주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를 한 거야. 국가를 틀고 시민을 향해 발포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딨냐?"
5·18민주화운동을 겪고 난 후, 그는 공포와 불면증에 시달렸다. 잠깐 졸면 꿈을 꾸는데, 어떤 눈이 항상 그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서울로 가 5·18의 참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다 다시 광주로 내려왔다. 그는 황석영의 이층집에서 동료들과 함께 곡을 만들었다. 죽은 동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전국은 물론, 나중에 홍콩·대만까지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그렇게 문화 활동을 하며 세월을 보냈다. 동료와 결혼해 자녀도 낳았다. 시대는 엄혹했지만,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아이들은 금세 자랐다. 그러다 왼쪽 머리에 뇌출혈이 발생해 오른쪽 몸이 마비됐다. 쉰 네살 때였다. 그는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최근 출간된 '양림동 소녀'는 그가 오랫동안 작업한 그 결과물이다.
먼저 '양림동 소녀'라는 30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지난해 서울국제노인영화제 한국단편경쟁부문 대상을 비롯해 4개 상을 받으며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이다. 내친김에 동명의 책도 냈다. 책에는 오랜 세월을 겪으며 그가 느꼈던 꿈과 희망, 절망과 좌절의 이야기가 수록됐다. 그는 서문에서 책이 "모든 아픈 이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오월의봄.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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