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이 기르기 좋은 ‘숲체험교육 대전’

데일리한국 2024-05-15 21:44:18
이훈 유아교육·아동상담심리치료 전문가. 사진=선치영 기자 이훈 유아교육·아동상담심리치료 전문가. 사진=선치영 기자

식목일이 가까운 날 산림청으로부터 정책자문위원 제안이 왔고 흔쾌히 수락했다. 필자에게 자문을 요청한 분야는 산림복지 분야 유아숲체험을 비롯한 숲교육이었다.

필자는 숲이 성장 과정에 준 아름다운 추억이 생생하게 맥박치고 있다. 막내였던 손녀딸을 유난히도 사랑해주셨던 할아버님 손을 잡고 함께 걷던 예산 수덕사 숲길. 필자는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에 부딪힐 때마다 따뜻하던 할아버님의 손과 숲속의 싱그러움을 떠올리면서 이겨낼 수 있었다.

또 할아버님과 숲으로부터 받은 푸르른 사랑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되돌려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두 아이를 기르고 유아교육 현장에서 어린이들을 대하고 있다.

숲이 주는 아름답고도 풍성한 혜택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스위스에서 큰 아이를 기르며 만났던 장 지오느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스위스 바젤시는 독일, 프랑스와 가까운 도시라 수시로 독일과 프랑스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은 책보다 캐나다의 애니메이터 프레데릭 백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먼저 만났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황량한 산악지대는 공기가 건조하고, 바람은 매우며, 황량하고 척박한 땅이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땅의 모습을 닮아 이웃 사이에는 서로 다투고 헐뜯고 빼앗고 싸우면서 하나 둘 떠나갔다.

황량한 오두막에 살며 양을 치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는 나무가 없어서 땅이 척박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철로 된 막대를 들고 황량한 땅으로 나가 구멍을 내고 떡갈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같이 그 일을 반복했고, 3년이 흐르는 동안 10만 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그중 2만 개가 싹을 틔웠고,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사람 키보다 크게 자랐다.

단지 나무만 자란 것이 아니었다. 숲이 우거지자 메말랐던 개울에 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새들이 날아오고 동물들과 곤충들이 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숲이 저절로 생겼다며 신의 기적이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그 놀라운 기적은 양치기 노인 엘제아르 부피에의 끈기와 노력이 가꾼 아름다운 성과였다.

프랑스 작가 장 지오느가 쓴  단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 자료=이훈 제공 프랑스 작가 장 지오느가 쓴  단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 자료=이훈 제공

프랑스 장 지오느가 쓴 이 단편 소설은 캐나다의 애니메이터 프레데릭 백에 의해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제작됐다. 마치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가 수십년에 걸쳐 묵묵히 도토리를 심듯이 불투명 셀 위에 색연필을 사용해 6년여에 걸쳐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렸고 1988년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수상을 비롯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지금까지도 사랑 받는 명작이다.

캐나다의 애니메이터 프레데릭 백의 애니메이션 장면. 자료=이훈 제공 캐나다의 애니메이터 프레데릭 백의 애니메이션 장면. 자료=이훈 제공

장 지오노의 단편 소설로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친 이야기 속 주인공 엘제아르 부피에, 그리고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작가 프레데릭 백. 이들은 숲이 우리 자연뿐만 아니라 사고와 문화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위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바꾼 수많은 영웅들을 알고 있지만, 그 뒤편의 숨은 영웅들이나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고난을 이기며 노력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세상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더욱이 어렵다고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더 나은 내일은 없다.

필자는 스위스에서 아이를 기르고 독일문화권 숲유치원을 비롯한 자연친화적이고 자율적인 킨더가르텐, 즉 유치원 교육 프로그램을 견학하고 체험한 지식과 경험을 우리 유아교육 현장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우리 ‘숲체험교육’이 유아교육의 일부로 무늬만 ‘숲교육’이 아닌 본격적인 유럽식 ‘숲유치원’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현행 3~5세 어린이집·유치원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누리과정’의 이면에는 공립유치원과 사립유치원, 어린이집 운영지원비 지원이라는 규제에 묶여 스위스와 독일, 덴마크 같은 유럽식의 자율적인 숲유치원 같은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현재 추진중인 유아교육(유치원)과 유아보육(어린이집) 통합, 즉 ‘유보통합’을 계기로 누리과정으로 일원화되어 있는 교육과정 개정이 필요하다는 소신이다.

현재 ‘숲체험교육’을 부분적으로 시행할 수밖에 없는 누리과정에 ‘숲유치원’ 자율적 도입, ‘숲체험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008년 숲을 활용한 유아교육, 즉 ‘숲체험교육’을 선구적으로 시작하고 2011년 ‘산림교육 활성화에 대한 법률’을 제정한 산림청을 중심으로 ‘유보통합’ 주무부처인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의 적극적인 제도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부처 뿐만 아니라 유아교육 교사의 직무능력과 관련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의 전면적인 개정과 신설도 요구된다.

저출산 문제 해법은 단순한 출산장려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 아이 기르기 좋은 여건과 제도와 지원을 확충하고 부모들이 마음 놓고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체험하며 풍요로운 내일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작지만 소중한 첫걸음, 바로 ‘숲체험교육 대전’이 아닐까 다짐해본다. 마치 도토리를 한알 한알을 심어 위대한 떡갈나무 숲의 기적을 만든 ‘나무를 심은 사람’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