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추자현 "남편 우효광, 내 인생에 빛이 되어준 사람"

스포츠한국 2024-05-06 06:46:09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추자현이 가슴이 먹먹해지는 지독한 멜로 영화로 돌아왔다. 

지난 3월 말 개봉한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는 미스테리 장르의 형식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지독하고 절절한 멜로에 가깝다. 영화 '텔 미 썸씽'과 '접속'을 만든 정통파 멜로 감독 장윤현이 연출한 '당신이 잠든 사이'는 교통사고로 선택적 기억 상실을 앓게 된 덕희(추자현)와 온갖 정성을 다 하며 그녀의 회복을 돕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수상한 남편 준석(이무생)의 스토리를 그렸다.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과 tvN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와 tvN '작은 아씨들', JTBC 드라마 '그린 마더스 클럽' 등에서 깊이 있고 안정적인 연기력을 선보이며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 왔다. 추자현은 신작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미술 강사 덕희 역을 연기했다. 인기 소설 작가 준석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지만 교통사고로 인해 선택적 기억상실을 앓게 되고 한없이 자상했던 남편에게 의심스러운 행적이 발견되면서 이를 추적해가는 인물이다. 

15년 만에 국내 스크린에 복귀한 추자현이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을 만나 영화 출연 이유와 그동안의 근황, 남편 우효광과 함께 이룬 단란한 가정 생활 등에 대해 공개했다. 

추자현은 10여년만에 매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한국에 돌아와서 활동한 시기가 꽤 됐지만 새로운 시스템에 발 맞추는데 시간이 걸렸다. 기자분들이 인터뷰 요청을 많이 해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제 말할 때가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제가 18세 정도에 데뷔를 했어요. 어린 시절 멋모르고 시작한 거죠. 그때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뭔가 바로 잡기에는 능력도 안됐고 마냥 열심히 하는 것 말고 다른 걸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러다가 인연이 닿아 중국으로 가게 됐죠. 20대 때는 남탓도 좀 한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하며 살았는데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29살 쯤 중국에 갔고 그곳에서 오랜 활동을 하면서 결국 제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됐죠. 20대 때 연기 잘 한다는 칭찬은 많이 들었지만 그 나이에 얼마나 잘 했겠어요. 인생을 살아온 깊이가 얼마 안되었을 때잖아요. 그 때의 풋풋함과 매력이나 끼를 발산하긴 했던 것 같은데 자기 관리나 이런 부분이 부족했어요. 연기에도 너무 힘을 줬죠. 외국 생활을 하며 일해보니 20대 때 부족했던 걸 알겠더라고요. 시행착오를 거치고 보완을 했죠. 중국 활동 시기가 제 연기관에 있어서 터닝포인트가 됐던 것 같아요."

추자현은 중국 활동에서는 달달한 멜로 장르도 여러편 소화했지만 국내 필모그래피 중에서는 제대로 사랑을 표현한 작품이 없었다. 20대 때 선보인 '사생결단'(최호 감독/2006)으로는 다수의 신인여우상과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동시에 받았지만 당시 필모그래피는 느와르에 편중된 경향이 있었다. 때마침 멜로의 대가 장윤현 감독에게 제안 받게 된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모국어로 된 멜로 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시기에 찾아온 좋은 기회였다. 

"20대 때 나이에 걸맞는 풋풋하고 청초함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제 스스로가 어두운 편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어두운 색채의 작품들로 오히려 호평을 받았죠. 30대가 된 후 제 성격도 많이 밝아졌고 중국에서 달달한 멜로를 여러 편 했어요.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사랑을 표현하는 건 쉽지 않다는 걸 느꼈죠. 30대후반 쯤 됐을 때 모국어로 멜로 작품이 그리워지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지나 이 작품 제안을 받았어요. 예산이 크지 않은 작품이었지만 장윤현 감독님의 열정이 정말 크셨죠. 제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장르였어요. 이번에 놓치면 나중에 못할 것 같았죠. 마치 인연처럼 저에게 다가왔어요."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남편 준석 역을 연기한 이무생은 추자현이 평소 함께 호흡을 이루기를 바랐던 배우여서 현장에서도 찰떡 호흡이 이뤄질수 있었다. 추자현은 이무생과 호흡에 대해 "이무생 배우와 호흡은 즐거웠다. 우리 영화의 장르상 속성과 다양한 장치들 때문에 덕희와 준석이 서로 사랑하는 과정이나 애틋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장면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엔딩의 극적 반전을 보이기 위해서는 두 사람 사이에 끈끈한 애정이 있다는 설정은 담겨야 했다. 제가 연기적으로 조금 더 덧붙여서 표현한 장면은 덕희가 컵라면을 먹는 장면이다. 기억을 잃은 덕희가 남편의 뭔가 남다른 행동들에 대해 두려움을 토로하는 장면인데 무생 배우가 저를 안았을 때 감정이 훅 올라오더라. '지금 너를 제일 사랑하는 것 같아'라는 대사를 통해서 결혼을 원하지 않는 덕희였지만 준석을 너무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감정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당신이 잠든 사이'를 관람한 관객들 사이에서 추자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신은 시어머니 역의 손숙과 전화통화 장면이다. 신들린 듯한 오열 연기는 거의 연극 속 1인극에 가까운데 배우 자신도 손에 마비 증상을 겪을 정도로 몰입해 찍은 장면이다. 

"덕희는 어릴 때 부모님께 버림 받고 장애가 있는 양부모님 밑에서 자란 친구에요. 아픔을 가졌지만 씩씩함 뒤에 감춘 인물이죠. 그런 내용을 베이스로 해서 시어머니와 전화신도 설계를 했어요. 제가 그런 상황을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알 수 없는 죽음에 놓이게 된 상황이니 하늘이 노랗고 이성도 잃게 되지 않았을까 싶었죠. 어떤 정도의 톤과 데시벨로 표현해야 할까 고민이 깊었어요. 너무 플랫하게 보여드려도 안될 것 같고 너무 과해도 안될 것 같고요. 그저 간단한 동선만 합의를 보고 현장에서의 감정에 몰입했죠. 손숙 선생님 목소리가 완성된 영화에서는 등장하지만 결국 저 혼자하는 연기였어요. 핸드폰을 잡고 바라보는데 갑자기 손이 마비되더라고요. '어머니, 이상한 소리가 들려요'라는 대사를 하는데 가슴 밑바닥부터 뭔가 요동치는 기운이 올라와요. 그리고 나서는 잘 기억이 안나요. 배우가 이성을 잃는 연기는 자주 경험하기는 어려운데 몇 작품에 한 번 이런 일을 겪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날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장면이죠."

추자현은 중국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 당시 '아내의 유혹'의 리메이크작 '회가적 유혹'을 포함해 '무악전기' '장안삼괴탐' '남교기공영웅전' '최후일전' '행복재일기' 등의 중국드라마에 출연하며 독보적 인기를 끌었다. 회당 출연료 1억 이상을 받을 정도로 중국에서의 그의 활약은 대단했지만 중국 진출 초기에는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추자현은 당시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과 신인의 자세로 중국 드라마 시장에 입문했다. 그가 타향 살이의 외로움을 느낄 때 가장 큰 힘을 주고 삶의 원동력이 되어줬던 존재는 현재의 남편인 우효광이었다. 

"효광 씨는 저에게 빛을 준 사람이에요. '사랑 해서 연애하고 또 남편이 됐다'고 말한다면 좀 아쉽조. 그야말로 제 인생의 빛과 같은 존재에요. 단순히 남자이자 남편 그 이상이죠. 저는 원래 부정적인 사람이었어요. 아무리 화려한 색이 있다고 해도 검은색을 칠하면 어두워지잖아요. 제가 그랬죠. 그런데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해준 사람이 효광 씨에요. 이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사랑도 사람도 잘 못믿었어요. 저에게 빛을 가르쳐줬고 처음으로 믿게 된 사람이죠. 그 사람이 주는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의 함을 믿게 됐어요. 사랑의 감정을 연기로 표현해보고 싶다고 느끼게 된 것도 효광 씨를 통해서에요. 저라는 사람 자체가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중국에서 연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인정받게 된 것도 효광씨를 만나고 난 뒤로 연기에 완급 조절을 할 수 있게 된 덕 같아요. 연기할 때 매번 너무 열심히 하고 강렬했다면 그를 만나고 나서 눈에서 힘을 빼고 목소리 톤에서도 힘을 뺄 수 있게 됐죠. '이렇게까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제 마음의 문의 빗장이 자연스럽게 열리더라고요. 그리고 그 문이 열리니 빛이 들어왔고요. 그 이후에는 그 문이 닫힌 적이 없어요."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과 tvN '작은 아씨들', JTBC 드라마 '그린 마더스 클럽' 등을 통해 여전히 깊고 원숙한 연기력을 선보였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중국 망고TV '승풍2023'에 출연해 뛰어난 춤과 노래 실력도 선보였다. 추자현은 소모되지 않고 의미를 남길 수 있는 작품이라면 한국과 중국 가리지 않고 도전을 계속할 생각이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후회가 되는 작품은 있어도 열심히 하지 않은 작품은 없는 것 같아요. 저희가 어릴 때는 지금처럼 유튜브에서 자신의 색채를 보여준다거나 다양한 OTT가 있던 시대도 아니었고요. 작품에서 오롯이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었죠. 그러다 보니 중국에서 활동도 하게 됐고 또 다시 한국에서 좋은 작품들도 선보이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조급하지 않게 신중히 작품을 선택하고 싶어요. 20~30대를 지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추자현이라는 사람의 이름에 잘 어울리는 색의 캐릭터를 만나고 싶고요. 효광 씨와 항상 나누는 이야기가 지금껏 정말 큰 사랑을 받았으니 주위에 많이 베풀며 살자고 해요. 예전에 사람을 잘 믿지 못했지만 지금은 주위에 너무 좋은 분들이 많으세요. 만약에 제 주위 지인이 지금 자갈길을 걷고 있다면 언제든 그 자갈길을 같이 걸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혼자 걷는 꽃길은 재미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