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좇는 존재의 고통…비극으로 돌아온 발레 '인어공주'

연합뉴스 2024-05-05 00:00:47

인간 변모 과정 잔인하게 묘사…참신한 안무·무대에 관객 호응

긴 바짓단으로 인어 꼬리 형상화…일본 전통인형극 '분라쿠'에서도 착안

3일 발레 '인어공주'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관객들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발레 '인어공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아름다운 '에리얼'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낭패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지난 1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존 노이마이어의 발레 '인어공주'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욕망하는 존재가 무너지는 과정을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낸 비극이다.

공연은 '인어공주'의 원작자 안데르센의 분신인 '시인'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수많은 매체에서 희극으로 각색된 '인어공주'를 안데르센의 원작으로 회귀시키겠다는 노이마이어의 의도된 설정이다.

동성 연인의 선상 결혼식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던 시인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 밑으로 미끄러지듯 추락한다.

심연 속에서 시인의 영혼은 인어공주로 다시 태어나고, 이후엔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공연은 왕자에게 마음을 뺏긴 인어공주가 바다마녀의 꼬임에 넘어가 인간의 다리를 얻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노이마이어는 인어공주가 꼬리를 없애고 다리를 얻는 이 과정을 매우 잔인하게 묘사했다. 뜯어내듯 꼬리를 벗겨낸 인어공주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괴로워한다. 팔과 다리를 힘껏 비틀면서 힘겨워하는 인어공주의 모습은 관객에게 기괴하게 다가온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고통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인어공주의 안무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왕자를 좇았지만,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인어공주는 끝내 사랑을 얻지 못하고 별이 되어 소멸한다.

3일 공연을 마친 후 무대인사를 하는 발레 '인어공주' 출연진

기대한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안무가 노이마이어가 새롭게 시도한 안무와 무대미술은 충분히 관객이 작품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긴 바지 의상으로 인어의 꼬리를 표현한 부분에서는 참신함이 돋보인다. 무용수들이 힘차게 다리를 들어 올릴 때마다 펄럭이는 바짓단은 영락없이 인어가 꼬리를 흔드는 모습이다.

인어공주가 헤엄치는 장면에서는 '마법의 그림자' 역을 맡은 남자 무용수 3명이 달라붙는다. 일본 전통 인형극 '분라쿠'에서 3명의 인형조종수가 하나의 인형에 들러붙어 조종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인어공주 역을 맡은 조연재의 완벽한 안무와 표정 연기는 관객의 기립 박수를 이끌었다. 조연재는 현란한 팔 움직임으로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사랑을 얻지 못해 괴로워하다 체념하는 장면은 마치 관객이 한 편의 '무언극'을 보는 느낌이 들도록 연기했다.

시인 역을 맡은 변성완의 안무와 연기도 눈길을 끈다. 무대 곳곳을 누비며 여러 무용수와 호흡을 맞추면서도 흐트러짐이 전혀 없다. 공연 마지막 조연재·변성완 두 무용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합동무를 추는 장면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번이 국내 첫 공연이었던 만큼 한계도 드러냈다. 현대무용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안무가 난해하고 군무의 합이 어색한 장면이 많다는 지적도 있다.

발레 '인어공주'는 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발레 '인어공주'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

hy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