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하 드라마’ 장르는 로맨스, 1위 감독 박태하의 ‘포항에서 생긴 일’[스한 위클리]

스포츠한국 2024-05-04 06:00:00

[포항=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주축 선수들을 대거 떠나보낸 팀의 사령탑으로 K리그 첫 시즌에 뛰어든 감독이 있다. 시즌 시작 전 많은 이들의 의구심을 샀던 감독은 예상을 뒤엎고 팀을 ‘K리그1 선두’에 올려놓으며 프로축구를 휘어잡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박태하(55)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다. 아내와 손을 잡고 산책하는 것이 취미라는 박 감독은 선수로도 감독으로도 오로지 포항만 바라보는 ‘로맨티시스트’다. 그는 올 시즌 한국프로축구 최고의 화제작으로 만들 ‘로맨스 축구 드라마’를 찍는 데 여념이 없다.

스포츠한국은 경상북도 포항시에 위치한 포항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박태하 감독을 만나 K리그1 선두 질주의 비결, 포항 구단과의 특별한 인연에 대해 들어봤다.

본인의 프로축구선수 커리어 전부를 바친 팀에 사령탑으로 돌아온 박태하 포항 스틸러스 감독.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본인의 프로축구선수 커리어 전부를 바친 팀에 사령탑으로 돌아온 박태하 포항 스틸러스 감독. ⓒ스포츠한국 김성수 기자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지난 시즌 FA컵(현 코리아컵) 우승팀이자 K리그1 2위팀이었던 포항은 시즌 시작 전 고영준, 김승대, 제카 등 주축 전력들을 대거 이적시켰다. 또한 FA컵 트로피를 안긴 김기동 감독마저 FC서울로 떠나보내야 했다. 누수가 워낙 크다는 점에서 올 시즌 포항의 부진을 점치는 의견 역시 적지 않았다.

하지만 새롭게 포항의 사령탑을 맡은 ‘구단 레전드’ 박태하 감독은 울산 HD와의 개막전 패배 이후 10라운드까지 9경기 무패(6승3무)를 달리며, 팀을 K리그1 1위에 올려놓았다. 연일 극장골을 터뜨리며 무패를 이어가는 포항에게 박 감독 이름을 딴 ‘태하 드라마’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

박 감독은 ‘축구를 즐기는 것’이 경기장에서의 훌륭한 퍼포먼스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만약 축구를 하지 않았다면, 어촌에서 태어났기에 자연스럽게 어부가 되는 등 다른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다.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축구를 지금의 나이가 돼서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선수들에게도 ‘직업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한다는 것에 만족하고 즐겁게 운동하다보면 경기장에서 좋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편안하게 훈련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내 방식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이 지도 철학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프로축구연맹 ⓒ프로축구연맹

물론 즐기기만 한다면 성적을 내기란 쉽지 않다. 전술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는 박 감독의 열정과 선수들의 헌신이 만나 ‘1위 포항’을 만들었다.

"유럽 축구 경기 영상을 많이 본다. 중요한 건 모방하는 것이 아닌, 해당 경기를 치른 팀들의 장점을 뽑아내 우리 선수들에게 맞을지 적용해보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며 전술을 짜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 선수들 역시 준비했던 축구를 운동장에서 펼쳤을 때 결과까지 잡으니 희열을 느낀다. 또한 우리 팀 대부분 선수들은 ‘경기에 나서고 싶다’는 열망이 표정에서부터 드러난다. 많은 선수들이 선발과 교체 출전을 가리지 않고 팀을 위해 역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희생한다. 감독으로서 감사한 일이다."

박 감독의 준비성은 경기 중에도 드러난다. 플랜A가 통하지 않거나 상대가 다른 수를 들고 나올 시 전술에 순간적으로 변화를 준다. 포항이 질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이기는 원동력 중 하나다.

"전술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가도 경기 결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성격상 무엇인가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꿔야 직성이 풀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더라. 결국 시도를 해야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가 나타난다. 성공하면 최고지만, 실패해도 ‘다음에 더 심사숙고하자’는 결심을 하며 전술적 힌트를 얻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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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된 ‘원클럽맨’... "포항은 운명이자 보금자리"

박 감독의 포항은 개막전 패배 이후 9경기에서 6승3무로 구단 무패 기록 역사에 새로운 흔적을 남겼다. 포항 구단의 단일 시즌 연속 무패 최장 기록은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의 2009시즌(2009년 5월24일~10월7일)과 황선홍 감독의 2015시즌(2015년 7월11일~11월5일)에서 나온 15경기 무패다.

해당 기록을 물어본 박 감독의 의도는 기록 경신을 위함이 아닌, 선수들을 칭찬하기 위함이었다.

"팀이 무패 기간 동안 매 경기 좋아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실수로 인해 실점을 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조직적으로 잘 움직였을 때 실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선수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다."

ⓒ프로축구연맹 ⓒ프로축구연맹

박 감독은 1991년 프로 데뷔 후 2001년 은퇴까지, 군 복무를 위해 상무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오직 포항에서만 선수 생활을 한 ‘원클럽맨’이다. 박 감독이 이후 K리그 코치 생활과 중국서 지도자 생활,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 임기를 거쳐 K리그 감독으로  첫 지휘봉을 잡은 곳 역시 포항이었다.

스페인 라리가 FC 바르셀로나의 상징이었던 리오넬 메시 등 한 팀에서 활약하던 원클럽맨 선수들의 충격 이적을 최근 몇 년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점에서 박 감독의 '순정'은 귀하다.

포항만을 생각하는 ‘로맨티시스트’ 박 감독은 마지막 말 역시 로맨틱하게 남겼다.

"당시 은퇴 선택이 인생에 이런 이야기를 남겨줄지 어떻게 알았겠나.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면 경제적인 이득을 더 보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포항이 좋아서 다른 곳에 가고 싶지 않았다. 또한 아내가 태어난 도시이며, 부모님이 계신 고향 영덕과 가깝다. 무엇인가를 희망할 때, 타이밍이 딱 맞아서 얻게 되면 그게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포항은 내게 운명이다. 원하는 팀의 감독을 하는 것도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프로축구선수 경력과 함께 시작한 포항 생활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중국 등 다른 곳에 잠시 나가 있기도 했지만 결국 ‘보금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포항이 마음에 들고,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인식을 항상 갖고 있어 정착했다. 이제 다른 곳에서는 못 산다(웃음)." 

ⓒ포항 스틸러스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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