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산해진미' 진주 식도락 여행

연합뉴스 2024-05-02 00:00:33

(진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전북 전주가 호남을 대표하는 음식 도시라면, 경남 진주는 경남 서부를 대표하는 음식 도시다.

지리산을 이고 있는 산청과 함양에서는 향긋한 산나물이, 삼천포에서는 남해안의 신선한 해산물이 올라온다.

이러한 풍부한 먹거리는 독특한 음주 문화인 '실비'와 '진주냉면' 등 진주만의 고유한 음식 문화를 만들었다.

◇ '육회'가 핵심…진주비빔밥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진주 중앙시장 인근 비빔밥 전문점이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곳은 진주식 비빔밥으로 유명하다.

갓 도축한 쇠고기로 만든 육회에 각종 나물과 고명을 풍성하게 올려 먹는 진주식 비빔밥은 입맛을 돋우는 동시에 건강까지 챙길 수 있어 인기가 많다.

비빔밥은 달걀부침이 올라가는 곳이 있지만, 진주식 비빔밥에는 이 달걀부침이 없다. 노른자를 비벼 먹으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나지만, 진주는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강조한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육회다.

신선한 육회가 들어간 진주식 비빔밥은 콩나물이 들어간 전주식 비빔밥과 구별이 된다.

빠뜨릴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함께 나온 선지해장국이다.

시원하면서 감칠맛 나는 해장국이 비빔밥 못지않게 맛있었다.

◇ 시장의 '소울 푸드' 우두머리 국밥

동트기 전 이른 아침 중앙시장을 찾았다.

중앙시장은 진주 사람들의 구심점 같은 곳이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장이 선다. 시장은 이른 아침부터 장을 찾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로변의 버스정류장 앞까지 좌판이 펼쳐질 정도로 활기찼다.

지리산 자락의 산청과 함양 등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채소들, 삼랑진에서 잡아 올린 생선들이 좌판에 오른다.

새벽부터 장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선 이들의 배를 채워줄 음식은 시장의 국밥이다.

중앙시장의 국밥집은 새벽부터 장을 찾은 사람들의 '소울 푸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우두머리 국밥'은 담백하고 깊은 맛으로 유명하다.

우두머리 국밥은 소머리 국밥의 진주식 표현이다.

고기와 함께 무, 대파, 마늘 등을 넣어 깊은 맛을 내며, 주문하면 뚝배기에 밥과 국을 얹은 뒤 강한 가스 불에 데워 나온다.

한 그릇 가격도 6천 원으로 저렴하다. 푸짐한 양과 깊은 맛으로 만족도가 높다.

◇ 대구 머리 튀김

대구 머리 튀김은 진주가 원조인 음식이다.

신선한 대구 머릿살을 사용해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얇고 가벼운 튀김옷은 대구 머릿살의 담백한 맛을 잘 살려준다.

특히 내부는 살이 연하고 부드러웠지만, 겉 부분은 바싹해 식감이 좋다.

이 요리를 살려주는 것은 특유의 양념장으로, 양파와 함께 대구 살을 적셔 먹으면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양념장은 고추장과 간장, 매실청 등이 섞인 듯 달콤하면서도 매콤하다.

대구 머리 튀김과 함께 제공되는 파전과 무생채, 나물무침 등도 입맛을 돋운다.

대구 머리 튀김을 맛본 뒤 서둘러 어탕국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점심을 두 번 먹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진주 토박이들만 가는 어탕국수를 먹을 차례다. 산청을 가로지르는 경호강은 진주 진양호까지 약 80리(약 32km) 물길이다.

이 지역에서는 풍부한 민물고기를 재료로 한 어탕국수를 맛볼 수 있다.

추어탕처럼 뼈째 갈아 끓여 국수가 함께 나오는데, 갓 잡은 민물고기의 신선함과 국수가 잘 어울린다.

◇ 독특한 음주문화 '실비'

진주의 '실비'는 통영에서는 '다찌'라고 부르는 선술집, 마산의 '통술'과 더불어 경남 지역의 3가지 독특한 음주문화로 손꼽힌다.

음식을 만드는 데 실제로 들어간 비용만큼만 값을 받는다는 뜻이다.

사람 수대로 기본 비용만 내면 안주가 무제한으로 나온다.

술을 마시다 안주가 떨어지면 또 다른 안주가 계속 서빙된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과 함께 실빗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실빗집은 주로 낮에 문을 열고 밤늦게까지 영업하는데, 우리가 도착한 것은 해 질 녘쯤이었다.

술을 주문했더니 주인아주머니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재빠르게 안주를 내왔다.

꼬막과 오징어 회무침, 해조류와 산나물이 먼저 나왔는데 술을 더 시키자 이번에는 멍게와 해삼이 나왔다.

그 뒤로는 가오리찜이 더 나왔고, 안주는 계속 제공됐다.

주인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실빗집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매스컴 등을 통해 실비문화가 알려지자, 서울에서 내려온 깍쟁이 손님들이 소주 한 병만을 지켜놓고 계속 안주만 먹는 바람에 실비로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기숙 씨는 "이기적인 고객 탓에 실빗집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실비 전통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지역민들이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 '육전이 핵심' 진주냉면

진주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음식 가운데 하나가 진주냉면이다.

진주냉면은 다른 냉면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육전이 고명으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진주에서는 많은 냉면 전문점이 있다.

진주 사람들은 냉면에 있어서는 대체로 일가견이 있다.

차를 사랑하는 현지인의 차회에 우연히 합석했는데 자신들이 좋아하는 냉면의 특성을 거론하며 각기 다른 냉면집을 추천했다.

냉면집의 지점별 특성까지 파악하고 있을 정도다.

어떤 지점은 감칠맛이 더 나고, 어떤 곳은 육수가 좀 더 진하다는 등의 말까지 들을 수 있다.

추천받은 냉면 전문점을 찾았는데 과연 이북식 냉면과는 구별이 되는 맛이었다.

냉면 국물이 좀 진하면서도 육전의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 깔끔한 육수와 잘 어울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면발과 고명의 조화, 진한 국물 맛이 어우러져 진주냉면만의 독특한 풍미를 선사한다.

◇ 빼놓을 수 없는 카페와 찻집

필자는 출장 시 일부러 모텔이나 호텔을 선택하지 않고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한다.

주인장 또는 여행자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진주 맛집 취재를 나설 때 걱정이 있었지만, 마음씨 좋고 지역에 대한 해박한 정보를 갖춘 게스트하우스 안주인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저렴한 실빗집에 대한 정보와, 제대로 된 진주냉면과 진주비빔밥에 대한 정보는 소중했다.

그에게서 얻었던 또 다른 소중한 정보가 있었으니 바로 수십 년 같은 자리를 지켜왔던 카페와 찻집에 대한 정보였다.

식사 후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숨은 카페와 찻집을 찾는 것이 좋다.

옛 정취가 풍기는 카페에서는 음악과 함께 다양한 맥주를 즐길 수 있었다.

전통찻집에서는 지역 차 애호가들의 차회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진주 음식 여행에서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먹거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장인 정신으로 발전된 음식들을 통해 서부 경남의 깊은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